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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제출 내용을 몰라서…" 시스템 먹통이 부른 법원 진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 법원 데이터 이관 작업을 위해 멈췄던 전자소송 시스템이 제때 복구되지 못해, 전국 법원의 재판부가 지연, 불편을 겪었다. 법원 홈페이지 캡쳐

2일 법원 데이터 이관 작업을 위해 멈췄던 전자소송 시스템이 제때 복구되지 못해, 전국 법원의 재판부가 지연, 불편을 겪었다. 법원 홈페이지 캡쳐

“화요일에 서류 제출했는데….”(피고 측) 

“지금 전산시스템이 다운 돼서요”(재판부)

전국 법원이 멈춰섰다. 지난 1일 수원‧부산 회생법원 개원을 앞두고 진행한 데이터 시스템 이관 작업에 문제가 생긴 탓이다. 법원행정처는 2일 오후 “기존 수원‧부산지법의 회생‧파산 관련 사건 데이터를 신설 데이터베이스로 이관하는 도중 오류가 발생해 2일은 재판사무·전자소송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공지했다. 왜 오류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부산회생법원 개원식. 가운데는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2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부산회생법원 개원식. 가운데는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데이터베이스 이관 작업은 지난달 28일 오후 8시부터 2일 오전 4시까지, 휴일인 1일을 활용해 법원 전산시스템을 멈추고 진행하려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데이터를 다 옮기지 못하고 일단 전산시스템을 재가동했다. 그런데도  오류가 개선되지 않아 시스템 복구에도 실패한 것이다다. 2일 오전에 “오후 1시까지 복구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실패했고, 이날 오후 5시 현재 ‘3일 오전 9시쯤 복구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제출한 서면도 못 봐…“이거라도 보세요”

전자소송이 도입되지 않은 형사재판은 재판에 필요한 서류가 모두 실물로 돼 있어, 전산 마비의 영향이 적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자소송이 도입되지 않은 형사재판은 재판에 필요한 서류가 모두 실물로 돼 있어, 전산 마비의 영향이 적었다. 사진공동취재단

판사: “시스템이 화요일 오후부터 정지된 상태라 재판부가 시스템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원고 측 진술해도 되겠습니까? 재판부는 제출한 서면 내용을 몰라서.” 

“원고 대리인 확인하셨나요? 일단 원고 대리인 (종이파일 건네주며) 이거라도 보셔서….” 

예상치 못한 법원 전산시스템 마비에 전자소송이 대세를 이뤘던 법정은 갑자기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갔다. 2011년 도입한 전자소송은 2021년 현재 민사소송의 97.3%, 가사소송의 89.7%, 행정소송의 100%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화했다. 따라서 이날 열린 민사 재판에선 지난달 28일 이후 소송 당사자들이 낸 전자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구두로 요약하는 것으로 갈음하며 변론을 진행했다. 재판 내용을 기록하는 참여관들도 컴퓨터 키보드 대신 펜을 잡았다.

오후 재판에서도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아 피고 측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원고·피고 측 변호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류철을 보며 논의하는 진풍경도 빚어졌다. 전산에 등록된 서류와 일정 등을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를 보며 재판을 진행하던 재판부는 종이로 된 서류를 들여다보며 다음 기일을 잡았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서울중앙지법 민사 재판부 중 전산마비를 이유로 오전 재판 일정을 변경한 재판부는 세 곳이다. 전자소송 비중이 적은 형사재판은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인 친구가 단톡방에서 ‘재판 공쳤다’고 말하는 걸 보고서야 법원 전산시스템 마비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서울행정법원 등의 재판도 대부분 전자소송으로 진행되지만,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변동된 터라 재판 자체가 적어 타격이 덜했다. 대전에 있는 특허법원도 이날 재판 일정은 없었다.

다만 이날 재판이 아니더라도 소송 당사자의 서류제출 등에 불편이 있고, 당장 이튿날 재판 일정 확인이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남아있다. 법원행정처는 ”국민여러분들께 큰 불편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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