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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엔들 잊힐리야"…국민가곡 ‘향수’ 테너, 박인수 전 교수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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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국민 가곡으로 사랑받았던 '향수'를 가수 고 이동원씨와 함께 불렀던 테너 박인수씨. 중앙포토

1980~90년대 국민 가곡으로 사랑받았던 '향수'를 가수 고 이동원씨와 함께 불렀던 테너 박인수씨. 중앙포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이렇게 시작하는 가곡 '향수'를 1989년 가수 이동원(2021년 작고)과 함께 불러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테너 박인수씨(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8일(한국시간 3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5세.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가요였다. 클래식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함께 불러,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함께 부른 ‘Perhaps Love(아마도 사랑은)’와 더불어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억된다. 이 노래가 수록된 이동원의 앨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는 13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국내 성악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고인은 ‘딴따라와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국립오페라단 단원에서 제명돼야 했다.

생전 이동원씨와 함께 '향수'를 부르는 고인. 유튜브 캡처

생전 이동원씨와 함께 '향수'를 부르는 고인. 유튜브 캡처

 이에 대해 고인은 “노래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낮고 질퍽한 곳이라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그곳이 나의 무대"라는 평소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밑거름되어 결과적으로 국내 음악계가 한층 풍성해졌다. '향수'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크로스오버는 자연스러운 장르가 됐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공존하는 ‘열린음악회’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포르테 디 콰트로’ 같은 크로스오버 스타들이 TV와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고인은 1938년 서울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요직을 거친 공무원이었으나 청렴했던 부친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외항선원을 꿈꿨지만 고교 2학년 때 교회 목사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기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졸업 후 구청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야간에 다녔다. 이화예고 이우근 선생에게서 무료로 성악 레슨을 받은 덕분에 60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재능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62년 성악가로 데뷔했을 때 대학 4학년 재학 중이었다. 5년 뒤 67년에는 국립오페라단의 베버 ‘마탄의 사수’에서 주역인 산림 조감독관 막스 역을 맡아 데뷔했다. 평은 좋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발성을 바꾸며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생전 독창회에서 열창하는 고인의 모습. 중앙포토

생전 독창회에서 열창하는 고인의 모습. 중앙포토

 절치부심한 고인은 68년 프리마 오페라단 ‘사랑의 묘약’에서 주역 네모리노 역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69년 서울 오페라 아카데미를 결성했다. 거기서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 원어버전 ‘라 보엠’에서 로돌포를 불렀다. 같은 해 서울대 선배의 주선으로 미국 버팔로에서 오페라에 출연했다. 이를 계기로 70년 5월 미국 유학을 떠나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클래스 오디션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으며 줄리아드 음악원에 다녔다. 미국 오페라 무대에서는 ‘라 보엠’ 주역 로돌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중 주역 바쿠스를 노래했다.
 83년 귀국해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된 고인은 2003년 퇴임할 때까지 300회 넘게 오페라 무대에 올랐고 2000회 이상의 독창회를 열었다. 서울대 퇴임 후에는 백석대 석좌교수와 음악대학원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플루티스트인 아들 박상준씨가 있다. 장례 예배는 LA 현지에서 3일 오후 6시에 열린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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