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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본부, 작년 80조 날렸다, 수익률 -8.22% 역대 최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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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건물 모습. 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건물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국민연금이 1988년 이후 역대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통화 긴축 기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투자를 다변화하고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운용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현재 논의 중인 연금개혁에서 수익률 제고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데,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2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은 -8.22%, 평가 손실액은 79조 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915조원의 적립금이 890조 5000억원으로 줄었다. 마이너스 수익률은 금융 위기 시기인 2008년(-0.18%), 미ㆍ중 무역분쟁이 발생한 2018년(-0.92%)에 이어 세번째이다. 자산 종류별로는 국내주식 -22.76%, 해외주식 -12.34%, 국내채권 -5.56%, 해외채권 -4.91%, 대체투자 8.94%로 잠정 집계됐다. 보통 주식과 채권은 반대로 움직이는데,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동반 하락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다만 세계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공적연금(GPIF) -4.8%, 캐나다 공적연금(CPPI) -5%에 비해 뒤쳐지지만,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14.1%,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17.6%보다 좋았다. 보건복지부는 “해외 주요 연기금의 운용수익률도 글로벌 증시 급락 등의 영향으로 크게 하락했으며, 국민연금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냈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도 “지난해 한국 증시(-24%)는 물론 미국 S&P 500지수가 20% 가까이 빠지는 상황에 국민연금은 상당히 선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성적을 보면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4.7%에 불과하다. 캐나다(10%),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7.7%ㆍ지난해 기준), 노르웨이(6.7%), 일본(5.7%)보다 낮다. 기금 수익률을 1%p만 올려도 기금 소진을 5년 늦출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저조한 수익률의 원인으로 비전문적인 지배구조와 전문인력 부족을 꼽는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는 투자 전문가가 없다. 정부 대표와 시민단체, 노조ㆍ사용자 대표 등이 참여해 5년 단위의 기금운용 중기 전략을 심의ㆍ의결한다. 대표성은 있지만 전문성은 없다. 그래서 지난 2018년 4차 재정추계 때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민간전문가로 구성)는 중기재정 전략의 비전문성을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수 운용 인력을 확보하기 힘든 구조가 이어진다. 기본급은 국내 투자사의 상위 50% 수준에 불과하고, 성과급을 포함해도 상위 25% 정도다. 가장 큰 결점이 기금본부가 전북 전주에 위치한 점이다. 국민연금 블라인드(익명SNS)에는 “기금운용직원 월급이 주임은 세후 200(만원) 초반, 전임은 300~400, 책임은 400~500수준” “대부분의 운용역은 시골 똥냄새 맡아가면서 출퇴근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 고독하다” 등의 하소연이 올라온다. 2020년 9월에는 기금본부 직원 4명이 대마초를 흡연하다 형사처벌되는 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기금본부가 전주로 옮긴 201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운용직 160명이 그만뒀다. 기금본부 관계자는 “연 서너 차례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도 목표 인원을 채우지 못하고, 일부는 면접까지 통과한 후 연봉을 확인하고서는 그만둔다”고 말했다. 운용직 정원(365명)을 채운 적이 거의 없고, 지금도 30여명이 부족하다. 특히 대체투자 분야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이 관계자는 “어렵게 뽑아서 길러놓으면 민간으로 이직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은 결혼 문제나 유아 의료와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2018년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10~50년을 보는 장기 투자 전략이 없다. 5년 중기전략은 전문적 그룹에 맡겨라”고 권고했다.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고 지원 사무국을 두며, 운용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 사무소 설치를 권고했다. 하지만 제대로 이행된 게 없다.
 박민정 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은 “운용직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사고 파는 것도 있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쌓고 시야를 넓히는 건데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다”라며 “국민연금법에 기금운용본부를 전주에 둔다고 돼 있어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서울사무소를 둘 수 없고, 7월 서울 강남구에 30석 규모의 스마트 워크센터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제주에, 사학연금은 전남 나주에 본부가 있지만 기금운용조직은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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