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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을 중국 내해로 만들 수 있다…시진핑 공들인 미얀마 항구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2020년 1월 1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네피도에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과 공식 회담을 가졌다. ⓒ신화통신

2020년 1월 1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네피도에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과 공식 회담을 가졌다. ⓒ신화통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나라는 미얀마였다. 시 주석이 그 해 유일하게 방문한 외국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얀마는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다. 양국 국경은 인도 접경지에서 라오스 접경지까지 2129㎞나 된다. 중국이 국경을 맞댄 14개 주권국가 중 몽골(4677㎞)‧러시아(3645㎞)‧인도(3488㎞)에 이어 네 번째로 길다. 미얀마는 갈등을 이어가는 인도와도 1643㎞의 국경을 맞댄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 주석은 2020년 1월 17~18일 미얀마를 찾아 당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만나 회담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19년 만이다.

당시 시 주석의 미얀마 방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미얀마가 일대일로 사업에 중요한 국가라는 것이고, 둘째는 2020년이 수교 70주년의 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미얀마를 찾은 실질적인 목적은 아무래도 시 주석이 공들여온 역점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방문 기간에 양국이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살펴보면 33개 중 13개가 인프라 분야라는 사실은 시 주석의 방문이 일대일로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당시 미얀마 문민정부로선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치 국가 고문이 로힝야족 추방으로 비난받는 상황을 경제개발과 해외투자로 만회해보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미얀마에 사는 135개 민족의 대부분이 중국 티베트계이거나 타이계, 불교도인 것과 달리 로힝야족은 인도유럽계이고 무슬림(이슬람신자)으로 이뤄졌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바다로는 벵골만을 끼고 있는 서부 라카인주에 주로 거주한다. 그래서 미얀마 정부는 이들은 라카인 주민으로 부른다.

중국이 일대일로와 관련해 미얀마에서 특히 눈독을 들이는 곳은 인구 2만의 항구도시인 차우크퓨(Kyaukphyu) 항이다. 인도를 마주 보는 벵골만에 접한 라카인주 차우크퓨항은 미얀마 최대도시인 양곤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 떨어져 있다.

차우크퓨는 크게 세 가지 전략적 가치가 있다.
첫째는 해양 물류 기지로서의 가치다. 심해항구인 차우크퓨 항구를 개발하면 중국 상품을 싣고 중동‧아프리카‧인도‧유럽으로 가거나 중동 원유를 싣고 중국으로 가는 화물선‧유조선의 중간 물류기지나 터미널, 저장고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는 중국과의 직선 물류 기지이자 에너지 우회 운송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차우크퓨는 미얀마와 중국 국경까지 600~700㎞ 정도 떨어져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의 목적으로 개발 중인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에서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파미르 고원지대인 카스 지구까지 거리인 3000㎞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중국으로선 지경학적으로 파키스탄 회랑보다 미얀마 회랑이 훨씬 유리한 셈이다.

실제로 차우크퓨는 미얀마-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의 출발지로 이미 활용되고 있다. 2013년 7월 28일 중국-미얀마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개통했으며 2017년 송유관이 추가 개통돼 현재 가스관과 송유관이 나란히 가동된다.

송유관은 차우크퓨에서 중국의 국경도시인 윈난(雲南)성 루이리(瑞麗)까지 793㎞가 연결돼 있는데, 중국은 이를 충칭(重慶)까지 추가 연결해 총연장 2200㎞로 확장할 계획이다. 가스관은 광시(廣西) 좡족자치구까지 2520㎞를 연결할 예정이다.

중국은 차우크퓨에서 국경까지 파이프라인은 물론 도로와 철도를 연결할 수도 있다. 파이프라인과 고소도로, 그리고 고속철도까지 연결되면 중국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 둘러싸인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중동산 에너지를 자국으로, 그것도 경제중심지인 동부 해안으로 신속하게 나를 수 있다. 믈라카 해협은 미국 해군의 영향권이다.

그뿐 아니라 차우크퓨에서 북쪽으로 100㎞쯤 떨어진 곳에 있는 시트웨 항구의 앞바다에는 미얀마의 가스전이 가동 중이다. 여기서 생산된 가스도 중국으로 신속하게 나를 수 있다. 한국도 미얀마 가스전에 투자 중이다. 시트웨는 중국과 경쟁 중인 인도가 개발 중이어서 미얀마에서 양국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중국이 이런 상황에서 차우크퓨 항을 통제하게 되면 일종의 인도양 국가가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차이나리서치센터는 중국에 대한 미얀마의 중요성에 대해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이 센터는 중국을 포함한 중화권에 대한 심층연구를 주로 하는 연구기관이다.

사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얀마와 육로로 연결돼왔다. 미얀마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30~40년대 중국과 도로로 연결돼 활발하게 물자를 수송한 전력이 있다. 당시 인도와 미얀마(당시 명칭은 버마)를 식민 경영했던 영국은 중일전쟁(1937~45년) 초기인 1937~38년 중화민국 장제스(蔣介石) 정부에 보급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미얀마 동중부 라시오에서 시작해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까지 잇는 길이 1154㎞의 ‘버마 공로’를 먼저 개통했다.

하지만 일본이 1942년 영국령 버마의 남부를 점령하면서 도로가 끊기자 다시 미얀마 북부 산악지대에 스틸웰 공로(레도 공로라고도 부름)를 건설해 보급을 이어갔다. 미얀마쪽 1033㎞, 중국 측 632㎞를 합쳐 전체 1726㎞에 이른다. 스틸웰 공로는 인도 서북부 레도에서 시작해 미얀마와의 경계를 넘은 뒤 친드윈 강을 건너 교통 요지인 미치나와 만시를 지나 국경도시 남캄을 지나면 중국 측으로 연결돼 쿤밍까지 이어진다.

마치나는 양곤과 철도로 이어지는 도시이며 만시는 양곤롸 도로로 이어진다. 현재는 미얀마 국경도시 뮤즈를 지나 중국 루이리(瑞麗)로 도로로 이어진다. 루비‧사파이어 등 미얀마의 보석과 골동품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교역로다.

중국·미얀마 석유·가스 통로와 경제회랑 노선. CGTN

중국·미얀마 석유·가스 통로와 경제회랑 노선. CGTN

중국이 차우크퓨 항에 눈독을 들이는 셋째 이유는 군사적인 측면이다.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이 이곳에 핵추진 잠수함이 기항할 수 있는 해군 기지를 건설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럴 경우 이 항구의 앞바다인 벵골만과 그 남쪽의 안다만 해를 포함한 인도양 전역을 아우를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인도, 일본, 프랑스 등이 수시로 군사훈련을 하는 이 바다를 사실상 내해처럼 쓸 수도 있다. 배치된 중국 군함들은 굳이 믈라카 해협을 거쳐 본국 남부 항구까지 오갈 필요도 없다. 700㎞ 정도 떨어진 본토로부터 고속철도‧고속도로 등으로 보급 물자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실현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미얀마가 군정에서 벗어나 안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시 주석이 미얀마를 방문하고 베이징으로 귀환한 지 14일이 지난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쿠데타 이후 과거 수치 정부가 서방과 맺은 계약은 모두 중단됐지만, 중국과 맺은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2022년 12월 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얀마 군부(땃마도)의 인권 관련 결의가 통과될 때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같은 상임이사국 러시아와 함께 기권했다. 비상임 이사국인 인도도 기권했다. 땃마도는 이 세 나라에 감사를 표시했다. 미얀마 군부와 중국과의 끈끈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미얀마가 안정되면 양국 경제교류는 이른 시일 안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차우크퓨와 중국을 연결하는 물류 통로가 가속할 경우 믈라카 해협을 거쳐 싱가포르를 지나 중국으로 향하는 에너지와 상품 운반로의 가치가 퇴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지정학적 소용돌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가공할 위력이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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