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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 기분 상했다"…'이재명 428억 의혹' 규명 쉽지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28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16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남겼지만 동시에 강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이 ‘그분’의 몫으로 약속했다고 검찰이 주장해 온 428억원과 관련된 혐의가 영장청구서에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이른바 '대장동 녹취록'. 사진 JTBC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이른바 '대장동 녹취록'. 사진 JTBC

대장동 일당 간의 대화 녹음을 푼 ‘정영학 녹취록’에 처음 등장한 ‘428억’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이었다. 이 녹취록에 등장하는 “최종 428억이네. 지네들(이재명 측)이 세금 내고 가져가야지”라는 김만배씨의 대사가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10월 이 대표를 겨냥한 폭로에 나선 유동규씨는 “이 돈이 이 대표 몫”이라고 주장했고 남욱 변호사도 지난해 11월 재판에서 “(천화동인 1호가) 이재명 지분이라는 것을 김만배씨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을 기소하면서 “이 대표가 김씨의 일부 지분 제공 약속을 보고 받고 승인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특혜를 준 게 확실하고 그 대가로 428억원을 받기로 약정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실제로 돈이 오갔다는 걸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이론적으로 뇌물죄(사후수뢰) 적용이 가능하다. 뇌물은 ‘약속’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의 주체가 이 대표가 아니라 그 측근 중 하나라면 역시 제3자 뇌물제공죄 적용 여부가 검토될 수 있다. 일부라도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이 전달된 게 확인됐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죄도 성립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영장청구서에는 금품 수수와 관련한 어떤 시나리오도 들어있지 않다.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는 “뇌물약속죄라는 게 있긴 하지만 실제로 금품이 오갔다는 물적 증거나 공여자의 자백도 없이 약속했다는 정황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자금 추적도 범죄수익 동결 압박도 불발 

 수사 초기 입증을 자신했지만 검찰은 결국 자금 추적을 통해 돈의 향방을 알아내지도, 녹취록에 금품 제공 의사를 표현했던 김씨의 시인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김씨나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 전 실장이 이 대표를 지목하면 끝나는 문제였지만 두 사람은 요지부동이었다. 검찰은 최근까지 김씨의 은닉재산을 발굴해 압박하는 전략을 썼다. 수 차례에 걸쳐 김씨와 주변 인물들 명의로 된 대장동 개발 수익 2070억원을 찾아내 동결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씨는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김씨는 최근 ‘200만원 든 계좌까지 뒤진다’며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기분 상했다는 티를 내고 있다. 당장 진술 태도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입 닫은 김만배…배임 입증도 난항 예고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순화동 이화여고 내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 뒤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순화동 이화여고 내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 뒤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428억 실종 사태’가 검찰이 영장청구서에 기재한 이 대표의 배임혐의(4895억원) 입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대가를 약속했다는 사실조차 입증할 수 없다면 배임의 동기가 의심받을 수 있다. 배임죄는 이 대표가 대장동 일당에 제공한 각종 행정 조치들이 성남시에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일이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어야 성립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이 열린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돈 버는 게 시장의 의무도 아니지만 적극행정을 통해 5503억을 벌었음에도, 더 많이 벌었어야 한다며 배임죄라 한다”며 “개발이익 중 70%를 환수못했으니 배임죄라는데, 그렇다면 개발이익 환수가 아예 0%인 부산 엘씨티나 양평 공흥지구, 일반적인 민간개발허가는 무슨죄가 되느냐”고 말했다. 성남시의 이익을 위한 적극행정이었을 뿐 특혜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배임죄 규명 역시 김만배씨가 협조하면 수월해지지만 김씨는 입을 열 생각이 없다. 김만배씨 측 관계자는 “법원에서 이 대표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면, 김씨의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연쇄적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씨 입장에선 수천억원을 찾느냐 빼앗기느냐가 걸린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검찰은 배임의 동기를 ‘1공단 공원화’ 공약 이행이란 ‘정치적 치적 쌓기’ 등에서 찾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 대표 개인이 재산상 이익을 얻었거나 이 대표 측근들이 받은 뇌물이 이 대표에게 유입된 정황이 나오면 그게 결론이었던 수사”라며 “난이도가 높은 사건임을 감안해도 수사의 명분을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배임 혐의로 기소한 뒤 428억원 약정 의혹에 대한 규명 노력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둘러싼 여러 지적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수사란 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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