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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노, 노"…韓 핵무장론에, 핵무기 권위자 헤커는 고개 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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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긴급진단-북핵 위협 속 한반도의 길을 묻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론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중앙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안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미주중앙일보와 함께 연재한다.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인터뷰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담당자 및 정보 전문가의 인터뷰, 기고문 등을 통해 남북 및 북·미 간 대치 상황의 궤적과 방향성, 그리고 가능한 선택지들을 짚어본다.

[한반도의 길①] 시그프리드 헤커 인터뷰

“노, 노, 노.”
핵무기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지난달 16일 미주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론에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개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개발하면 안된다는 확언이었다. 그는 “여론과 북한의 압박을 잘 이해하지만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한국의 핵 개발은 결국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지난달 16일 미주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핵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세계적인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지난달 16일 미주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핵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용어사전시그프리드 헤커

핵무기 전문가로서 최근 25년 동안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 핵 보유국을 다수 방문했다. 2004~2010년 북한을 매년 방문해 핵 시설 등을 둘러봤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금속공학 박사. 30년 간 미국 로스 알라모스 원자력 연구소장을 맡았고, 지금은 스탠포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최근 ‘전술핵’을 언급했다. 한국에 기술적 능력이 있나.
“물론이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핵무기를 할 수 있다. 정부의 자신감에도 그런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기간에 개발이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먼저 핵 연료가 필요하다.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이 있어야 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기업과 맺은 계약에는 핵 연료 개발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연료를 무기화하기 위해 디자인하고, 만들고, 테스트해야 하는데 한국 지자체에서 이런 실험을 하도록 허락할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핵을 탑재할 미사일의 제조 역시 어려운 부분이다. 정리하면 ‘한국이 전술핵을 만들 수 있나’고 묻는다면 답은 ‘예스’다. 하지만 실제 내용과 과정을 보면 매우 복잡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은 이미 30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해 총 6번의 실험을 마쳤다. 또한 수 백번의 탄도 미사일 시험을 마쳤다. 한국이 독자 핵무기 개발과 실험에 나선다면 북한에 필적한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지나간 30년을 따라잡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북한이 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한다면 이에 맞는 대응책도 필요해진다. 따라서 한국이 개발에 나선다면 엄청난 시간의 노력과 자원이 투입되며 상당한 액수의 국방비가 투입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에 대한 억제력을 한국 스스로 지니려면 결국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입해야 가능하다.”
제조 능력과 별개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니면 단순히 정치적인 제스처로 봐야 하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제스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미국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은 핵확산 방지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 왔다. 핵확산방지조약(NPT)은 미국 입장에서 조약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국제적인 제도(regime)로 간주된다. 그런데 갑자기 동맹국인 한국이 핵개발에 나선다면, 이는 NPT의 탈퇴 수준을 넘어 미국의 모든 노력을 붕괴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한국은 매우 불행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현재 원자력 에너지 측면에서 매우 촉망받는 국가가 된 한국이 그냥 북한 수준의 나라가 돼버리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슬쩍 모른 척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하지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 이후 원전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전술 핵무기 개발은 민간 차원의 핵에너지 개발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나는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전과 부산에 있는 매우 훌륭한 시설들을 봤다. 미국 민간기업이 할 수 없는 규모였다. 품질 좋은 압력 탱크를 만들어 미국 경수로에 수출하고 있다. 전력도 25~30% 원자력을 통해 쓰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 민간 에너지 시설을 핵무기와 교환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9월 27일 서울 중구 힐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중앙포토

2018년 9월 27일 서울 중구 힐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중앙포토

“남과 북, 핵무기 권한? 위험한 시나리오”

한국에선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회의론이 번지고 있다.
“핵우산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치밀하고 인내력 있는 관리를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약 남과 북이 모두 핵무기를 갖고 최근 드론 사태처럼 여러 도발이 오가는 과정에 남북의 지도자가 핵무기 발사 권한을 갖고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이는 국제사회와 한국인들에게 너무도 위험한 시나리오다.” 
얼마 전 북한이 대형 열병식에서 무기들을 과시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2004년 이후 6년 동안 매년 북한을 방문하면서 무기와 미사일 기술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기에 예상된 내용이라고 본다. 기술이 향상되고 대형화되고 있다는 현실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2004년 10월 북한 영변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왼쪽 여섯째) 박사가 경수로 조정실을 둘러보며 북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2004년 10월 북한 영변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왼쪽 여섯째) 박사가 경수로 조정실을 둘러보며 북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핵실험을 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에 필요한 제반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2006년 첫 실험이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기반이 됐고, 이후 5번은 대부분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2017년 10월에는 매우 큰 폭발이 있었고 아마도 수소폭탄으로 추정된다. 이를 종합하면 핵무기 개발 능력을 분명히 갖고 있으며 미사일 탑재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추정컨대 핵무기 자체를 최소화해 스커드나 노동미사일과 같은 중단거리 미사일에 탑재해 한국과 일본의 모든 지역으로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에도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향해서는 높은 탄도로 발사각을 유지해 실제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하는 건 매우 어려운데 아직은 이 기술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번 실험과 열병식을 할 때마다 이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도 같은 생각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공식 발표를 들어보면 워싱턴이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 군당국은 이미 ‘북한이 핵미사일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한 발 더 나아간 분석을 내놓고 있다.”

“美 향한 핵공격 가능국 러·중 그리고 北” 

그런 능력을 만약 이미 북한이 갖고 있다면 미국 정부가 ‘가장 큰 위협’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나.
“그렇다. 전 세계에서 미국을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 그리고 작은 나라 북한이 전부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이 조장하는 위협에 매우 민감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단거리 미사일로 한국에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미국에 큰 위협이다.” 
2004년 북한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만찬 행사에서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2004년 북한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만찬 행사에서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2004년 어떤 계기로 북한을 방문했나. 당시 김계관 부상과 만났고, 돌아와 연방의회에서 증언도 했다.
“공무가 아닌 민간인 초대 방문이었다. 북한은 7년 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초대해 영변의 핵심시설까지 보여줬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004년 북한 첫 방문 마지막 일정이 끝난 날인 금요일 저녁 보자고 하더니 영변 핵시설에 대한 내 결론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 말하는 내용이 정확히 미국에 돌아가서 전달할 내용’이라고 말한 뒤 설명했고, 실제 그대로 미국에 돌아와 의회에 공개했다. 이듬해 북한에 갔더니 있는 그대로 의회에 증언했다며 나를 존중한다고 말하더라. 이후에 북쪽 기술자들과의 신뢰 관계가 생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만 묘사하거나, 과장 또는 축소하지 않고 본 것들을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방문에는 스탠퍼드대 존 루이스 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북한을 여덟 번 방문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핵과 관련된 동일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정보는 더욱 정확했다고 본다. 당시 2002년 북의 농축 우라늄 개발이 알려지고 NPT(핵확산 금지조약) 탈퇴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붕괴하는 등 악화일로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김계관 부상 등 북한의 고위 관리자들과 과학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말하는 핵무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북한 사람들은 매우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이다. 일반적이고 공식적인 대답은 ‘아직 존재하는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이라고 말한다. 더 이야기를 깊게 하다 보면 그들은 핵무기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력이 있다고 보고, 이 때문에 핵을 개발하고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 70년 전 한국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가.
“그렇다. 동시에 리비아와 이라크를 보더라도 미국은 충분히 북한에 그런 적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세계 정세와 한반도 정세로 볼 때 그들이 개발한 핵이 향후 있을 수도 있는 충돌이나 공격에 대한 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北, 대미 외교와 핵개발 지속 ‘이중전략’”

2004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왼쪽 네째) 박사가 영변의 냉각수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북한 관계자가 사용후핵연료를 제거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2004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핵무기 연구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왼쪽 네째) 박사가 영변의 냉각수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북한 관계자가 사용후핵연료를 제거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제공

북한을 지켜봐 온 과학자의 입장에서 그게 논리적이라고 보는가.
“전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겪었고 실제 아직도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는 ‘말이 된다’고 본다. 반면 북한 관리들과 외교관들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공식적인 외교 방침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북한의 논리를 더 이해하려면 김일성이 1990년 전후에 미국과의 화해 정책을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고 외교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은 최근 30년 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외교적 접근과 동시에 군사기술적으로는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소위 이중 전략(dual strategy)을 구사했다. 외교와 핵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인데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도 보이지 않게 핵기술을 증강해온 것이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북핵과 관련해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이 여럿 있었지만, 국내외 정치적 요소에 치중해 기술적인 정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제네바 합의에 따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활동 시기에도 북한이 계속 핵개발을 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북은 KEDO 기간 중에 영변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해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라늄 쪽으로는 연구 개발을 지속했다. 미사일 디자인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개발을 계속 진행했다. 제네바 합의가 깨진 직후 북한의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은 매우 활발해졌다.”
그럼 제네바 합의를 깬 미국의 결정은 결국 옳은 판단이었나.
“그렇지 않다. 로버트 갈루치 등 제네바 합의의 주역들은 KEDO를 통해 북핵 개발을 억제하고 북과 더 많은 교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KEDO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됐다면 북한의 에너지 상황은 크게 개선됐을 것이며, 북한이 농축 우라늄에 눈길을 줄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KEDO와 제네바 합의가 무산된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 미국의 뼈아픈 실수다.”
그런 실수에는 잘못된 정보가 문제였나, 아니면 올바른 정보를 갖고서도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인가.
“농축 우라늄 등에 대한 정보는 모두 제대로 된 것이었다. 클린턴에서 부시로 정권이 인계되면서도 북한 정보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정권의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매파들은 근본적으로 북한과의 거래나 협상을 용인하지 않았다. 북한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국가로 낙인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시 정권에서 존 볼튼 당시 부장관은 자신의 책에서도 북의 우라늄 농축이 제네바 합의를 깨트리는 ‘망치’ 역할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미국의 원자력 연구소 로스 알라모스(뉴맥시코) 책임자로 일했고 2004년부터 북한을 비공식 방문해 북한 관계자들과 토론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책임있는 결정과 선택의 부족이 원인이었다.”

“2주 전 평양 열병식은 하노이 노딜의 결과” 

2019년 2월 28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가진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2월 28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가진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출간한 저서 『힌지 포인트(Hinge Points)』를 통해 북핵에 대한 결정적 순간들에 대해 언급했다. 가장 결정적 고비가 언제였나.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하노이 회담은 양측 모두가 망친 결정적 기회였다. 나는 북한에 동정심을 갖거나, 미국이 항상 옳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과 2019년 정상회담 이후 좀더 구체적인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될 수 있도록 양측이 머리를 맞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로 회담에 임했으며, 갑자기 등장한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은 회담 전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협약에도 응하지 말도록 조언을 해왔다.”
그렇다면 당시 트럼프의 대응은 옳았나.
“전혀 아니다. 물론 협약을 한다고 그 다음달에 비핵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 프로세스의 첫 발을 딛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김정은은 굴욕적인 기분으로 북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핵무기와 미사실 시험은 지속됐다. 전 세계가 2주 전에 본 평양의 열병식이 바로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결과다. 하노이는 북핵 역사의 가장 큰 결정적 순간이었지만 결실 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김정은은 모든 외교채널을 닫고 무기 개발에만 열중했다. 그가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지 더이상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지난달 8일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열병식 당시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8일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열병식 당시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지켰다고 평가한다.
“동의할 수 없다. 부시, 오바마, 트럼프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실수를 거듭했다. 기술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위해성을 분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했다. 부시 정권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할 경우 우라늄 폭탄은 10년이 아닌 6개월 후에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파기 결정은 후폭풍에 대한 분석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적 동기를 갖고 내려졌다. 트럼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변시설을 닫는 것으로 핵 프로그램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2004년 이후 7년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그들의 경제 수준 변화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이전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7년 동안 경제 수준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고 많은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쓰고 있었던 점은 안타깝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고 평화를 담보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비핵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류를 부를 수 있다. 북한의 우려와 방향을 잘 이해해야 하고 남북한이 협력해야만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 비핵화는 평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조건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핵은 그 힘이 크기 때문에 좋은 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해가 될 경우에는 최악의 것이 될 수 있다. 예전부터 주장해왔듯이 그들이 가진 핵무기를  민간 차원에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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