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더라도 기어이 친견해야 하는 건물. 그런 건축 성지 목록의 맨 윗단에 적히는 이름. 원형 돔을 사각 평면 위에 얹어낸 기하학적 성취의 정수. 천상에서 거대한 체인으로 사뿐히 돔을 매단 듯한 비잔티움 성전. 현실의 물질로 비물질적 공간을 구현해낸다는 의지로 세운 인류 최고의 건축 걸작.
그런데 그 건물의 알현을 위해 이스탄불을 방문하면 의외의 상황을 직면한다. 골상이 전혀 다른 회회아비들이 코리안을 형제라며 얼싸안는 것이다. 그들의 삼촌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근거로 깔려있다. 이국 재난에 둔감한 한국인들이 튀르키예 지진 구호에 앞다툰 것에도 같은 믿음이 있다. 그런데 왜 튀르키예는 머나먼 동쪽 나라에 파병했을까. 이해하려면 파란만장한 그들의 역사를 우선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전쟁 참전 맹방 튀르키예
우리와 피를 나눈 이슬람 국가
한국에도 등장한 이슬람 혐오
종교 포용이 우리의 헌법 정신
최근의 발굴 성취는 인류 최고의 유적지가 아나톨리아에 있다고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의 튀르키예를 담고 있는 지명이다. 이곳의 역사적 유구성은 구약성서도 증명한다. 아브라함이 거쳐 갔다는 하란도, 노아의 방주가 걸터앉았다는 전설의 아라랏산도 아나톨리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서양사의 진정한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로마 시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나톨리아반도의 끝단 쪽으로 천도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콘스탄티노플인데 하필 그 황제는 핍박받던 기독교를 공인한 인물이다. 기독교는 국교가 되었고 그 위신에 맞춰 세운 건물이 건축학도의 순례성지, 하기아소피아다.
이후 아브라함의 다른 후손들, 즉 이슬람이 서아시아를 장악했을 때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대꾸했다.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이 자신들의 대응을 일컫는 이름이 지하드, 즉 성스러운 전쟁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선보일 시기에 오스만제국은 절대 난공불락이라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다. 유럽의 역사서는 함락되었다고 서술한다. 비잔티움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고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하기아소피아 주변에 네 개의 첨탑이 추가되었다. 모자이크 성화는 회칠로 덮이고 벽에 쿠란 성구가 걸렸다. 기독교 바실리카가 아니고 이슬람교 모스크 아야소피아로 변모한 것이다.
오스만제국의 팽창은 발칸반도를 지나 빈 코앞까지 이르렀다. 함락위기를 넘긴 빈 사람들은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 빵을 만들어 씹어먹었다. 합스부르크 왕실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가며 파리에 전파했다는 게 크루아상의 전설이다. 이 야사는 진위를 넘어 유럽인들이 지닌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그래서 오히려 크루아상을 금기 식품으로 친다더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이야기도 있다.
1차대전에 패전하면서 오스만제국도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다. 아나톨리아에 정교분리의 새로운 세속국가가 세워졌으니 그게 튀르키예다. 아야소피아는 이번에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덩치는 크나 허약했던 신생국가는 이슬람 혐오 여전한 기독교 유럽국가와 미국으로부터 자립을 위한 원조를 확보해야 했다. 우선 필사적으로 나토 회원국이 되어야 했고, 그러려면 호감과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피의 결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국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마무리 시기에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정치적 이유의 참전이어도 결국 전장을 달린 것은 국민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튀르키예의 국기에 여전히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현 대통령 에르도안은 명시적 이슬람주의자이며 튀르키예의 이슬람 정통성을 선명히 부각하고 있다. 가장 상징적 사건은 국명을 터키가 아닌 튀르키예로 바꾼 것이다. 그간 터키행진곡이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튀르키예행진곡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아야소피아도 다시 모스크로 바꾸었다. 그 이슬람이 우리와 피를 나눈 사이다.
이제 한반도로 돌아와 보자. 이 땅에서 이슬람의 성전(聖戰)을 치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도할 성전(聖殿)을 짓겠다는데도 반대가 드세다. 지리상 말레이시아에서 알제리 사이의 국가 국기에는 초승달이 흔하다. 그 지역의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모태신앙으로 무슬림이 된다. 이들을 모두 폭력적 근본주의자라고 덮어놓고 의심하는 것이 폭력적이다. 모든 무슬림에게 크루아상도 돼지고기처럼 금기 식품이리라는 선입견처럼 위험하다.
질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향한다. 대한민국은 종교·신념·양심의 자유가 보장된 세속국가다. 그 헌법은 차별·혐오·편견을 부인한다. 그럼에도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종교집회가 부인된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헌법부정이다. 우리는 추석, 대보름의 보름달 국가이고 국기 복판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초승달이건 반달이건 넉넉히 담아내는 것, 그게 우리의 문화 정체성이어야 한다. 세종로를 점거하는 어떤 종교의 아우성 집회가 허용된다면 다른 종교의 기도 공간도 포용되어야 한다. 튀르키예가 피를 나눈 형제 나라라면 그들의 종교도 마땅히 이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서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