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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국가보훈부와 재외동포청의 막중한 임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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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여야가 극한 대립과 정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보기 드문 광경이 국회에서 연출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한 그 날, 국회에서 별도로 100건의 법률 개정안이 상정됐다. 그중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반대표 없이 여야 의원 267명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이 제안한 법안마다 '일단 반대'부터 외쳤던 야당이 다른 모습을 보여줘 신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에서 영현 봉송을 보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은 윤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에서 영현 봉송을 보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은 윤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 출범 8개월여 만에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이 극적으로 개정됨에 따라 오는 6월쯤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고, '지구촌 한민족 공동체' 구축의 구심점이 될 재외동포청이 외교부 외청으로 신설된다. 사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당이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을 일단 유보하면서 합의에 돌파구가 열렸다. 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적극적 지지층인 '이대남'의 반발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각오한 결정이었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국가보훈부와 재외동포청 신설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안 통과돼 #보훈부, 국가 정체성 재정립 시급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없는 현실 #"후보 3곳 놓고 서울시와 협의 중" #저평가 유공자, 제대로 선양하고 #최재형 등 '부부 합장' 근거 필요 #국립묘지법 등 개정해 예우해야 #재외동포청, 한민족 구심점되길

'보훈 가족' 출신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국가보훈부 승격을 위해 누구보다 동분서주했다. 그는 앞으로 보훈과 선양을 통한 대한민국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게 됐다. [중앙포토]

'보훈 가족' 출신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국가보훈부 승격을 위해 누구보다 동분서주했다. 그는 앞으로 보훈과 선양을 통한 대한민국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게 됐다. [중앙포토]

 당장은 크게 부각되지 않더라도 국가보훈부와재외동포청 신설은 두고두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식민지와 6·25전쟁의 혼란을 겪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 성장·발전하는 과정에서 독립·건국·호국에 헌신한 수많은 유공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선양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7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 730여만명을 국격에 걸맞게 제대로 끌어안겠다는 각오를 대내외에 피력한 의미도 작지 않다.

 여야 합의와 범국민적 지지로 출범할 두 기관은 앞으로 어깨에 짊어질 임무가 막중하다. 큰 기대만큼이나 해야 할 과업이 산적해 보인다. 1961년 군사원호청 창설 이후 62년 만에 독립부서가 되는 국가보훈부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립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독립·건국·호국 등에 대해 이념과 정파에 따른 이견이 난무하면서 극심한 가치관 혼란을 겪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에 맞는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하고, 이에 역행하는 세력을 배척하는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정치적 이유로 억울하게 잊히거나 저평가되거나 심지어 매도당한 유공자를 신원(伸寃)해야 한다.

이승만(오른쪽 셋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의 1920년 상하이 체류 당시. 가장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방송 영상 캡처]

이승만(오른쪽 셋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의 1920년 상하이 체류 당시. 가장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방송 영상 캡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을 기리는 변변한 기념관조차 없는 현실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가 서울시와 협의해 '이승만 기념관'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다니, 소모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번듯한 기념관을 만들어 당당하게 선양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가짜 유공자가 진짜로 둔갑하거나, 공적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사례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4·3과 여순 및 5·18에 대한 적절하고 합당한 자리매김은 필요하지만, 특정 정치 세력이 정의를 독점하거나 정파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단단히 갖추는 일도 빼놓을 수 없겠다. 파행을 겪어온 광복회 정상화도 시급하고, 베트남 참전 왜곡에도 대응해야 한다.
 국가보훈부 장관은 '현대판 제사장(祭司長)'이라 볼 수 있다. 전통시대에 하늘과 군왕 사이에서 의례를 주관했다면, 이제는 국가와 국민, 역사와 국민 사이에서 교감을 끌어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해 여름 새뮤얼 파파로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과 환담하는 모습. 파파로 사령관은 "미국의 보훈 문화는 레이건 대통령의 보훈부 신설로 가능했다"고 조언했다. [국가보훈처]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해 여름 새뮤얼 파파로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과 환담하는 모습. 파파로 사령관은 "미국의 보훈 문화는 레이건 대통령의 보훈부 신설로 가능했다"고 조언했다. [국가보훈처]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해 7월 27일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해 추모의 벽에 헌화, 묵념하고 있다. 추모의 벽에는 3만6634명의 참전 미군과 7174명의 한국군 카투사 등 6.25 전사자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겼다. [국가보훈처]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해 7월 27일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해 추모의 벽에 헌화, 묵념하고 있다. 추모의 벽에는 3만6634명의 참전 미군과 7174명의 한국군 카투사 등 6.25 전사자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겼다. [국가보훈처]

 국가보훈부 승격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발로 뛴 박민식 현 국가보훈처장(장관급)은 부친인 고(故) 박순유 중령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보훈 가족'이다. 지난해 여름 방미했을 때 새뮤얼 파파로 미국 태평양함대사령관은 박 처장에게 "미국의 앞선 보훈 문화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8년 보훈부(DVA)를 신설하면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국가보훈부 출범을 계기로 국가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보훈과 선양을 재점검해야 한다. 예컨대 구멍 많은 '국립묘지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일제에 의해 유해조차 사라진 안중근 의사뿐 아니라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역임한 '연해주 한인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도 일제가 총살한 뒤 시신을 감췄다. 이런 독립운동가의 배우자는 현행법에선 국립묘지 합장 자격이 없다. 다행히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 윤주경 의원(국민의힘) 등이 특별 묘역 조성 등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니 여야가 초당적으로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104주년 3·1절 즈음에 국가보훈부와 재외동포청의 의미를 함께 새겨보면 좋겠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컬러 얼굴 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화면에는 "러시아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내 심장이 더 차갑다"는 최 선생의 말씀이 보인다. 1920년 4월 일제에 의해 총살된 최 선생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르면 8월 키르기스스탄에 묻힌 부인의 유해를 봉환해 국립묘지에 먼저 합장묘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논의중이다. [국가보훈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컬러 얼굴 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화면에는 "러시아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내 심장이 더 차갑다"는 최 선생의 말씀이 보인다. 1920년 4월 일제에 의해 총살된 최 선생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르면 8월 키르기스스탄에 묻힌 부인의 유해를 봉환해 국립묘지에 먼저 합장묘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논의중이다.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