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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마이너스 라이프, 플러스 라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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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오랜만에 회사 카페에 들렀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곳곳에 있습니다. 초연결의 혜택으로 동료들과의 협업도 가상화한 지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여러 곳을 다니며 일하는 유동화한 삶은 선택의 축복을 주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고단함을 동반합니다.

일하기 전 무심코 선택한 메뉴, ‘오늘의 드립’은 디카페인입니다. 커피의 각성 효과를 빌어 안개가 자욱한 머리를 억지로라도 움직이려는 시도가 저지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리 민감하지 않은 신체는 그윽한 향만으로도 속일 수 있다 믿으며 카페인 없는 커피를 들고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꽤 머리를 써야 하는 논의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플라세보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에코백·채식 같은 줄여 사는 삶
타인에 대한 관심 늘려가는 삶
그것이 함께 사는 우리의 인생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어제는 무알코올 맥주를 마셨습니다. 태생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빈곤한 유전자를 받아 차례상 음복으로도 홍당무가 되기 일쑤인 제게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맥주는 체중관리와 목마름의 갈림길 위 구세주와 같습니다. 팬데믹의 지루함에 매일 한잔씩 마신 맥주로 늘어난 체지방으로 기겁한 사람들을 위해 칼로리마저 뺐다는 이야기에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지난주 바쁜 점심에 오랜만에 먹은 햄버거의 곁들임은 당분을 뺀 콜라였고, 주말 세미나에 갈 때는 자동차를 내려놓고 공유 자전거를 이용해 한강변 따라 주파하는 것으로 몸속의 칼로리를 태웠습니다.

주변에도 마이너스의 행렬이 넘쳐납니다. 탄수화물이 빠진 샐러드와 닭가슴살 도시락을 싸 온 동료의 점심은 일상적입니다. 1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용기에 넣고 비닐이 아닌 보자기에 묶여 에코백에 담겨있습니다. 가방 속 화장품은 파라벤 같이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은 제외하였고,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내게 불필요한 물건을 이웃과 나누거나 저렴하게 파는 플랫폼 역시 나날이 성황입니다.

최근 지인과 함께한 식사는 육식을 지향하지 않는 비건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메뉴는 쉐프의 부모님이 함께 가꾸신 자체 농장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당일 공수받아 요리되었습니다. 먼 지구 건너편에서 생산된 산해진미를 즐기던 예전 제국의 풍요로움은 탄소 배출의 발자국이 길어지며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그늘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로 자급자족을 도모하며 간소한 삶으로 돌아가길 희망합니다.

이렇듯 무언가 빼는 것은 이제 삶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빼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몸 안의 지방은 쉽게 빠지지 않는 애증의 친구와 같습니다. 중년 나이, 지방의 역할이 없기만 한 것이 아니란 기사에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요. 무엇보다 내 마음의 짐은 오히려 커지는 듯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가까운 이들의 삶은 무언가 도울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대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태반입니다. 그러해도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성장의 과정 속 좌절과 낙담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애정의 크기에 비례하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게다가 가족과 친구, 동료와 지인으로 확장되는 네트워크는 연결의 수를 줄이기도 어려운 데다 나날이 켜켜이 쌓여 인연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그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 가급적 눈길을 피하려고만 하다 요즘엔 나의 관심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연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허투루 듣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그저 몇 시간의 만남에도 호기심과 오지랖이 발현되는 나이로 접어들며 예전보다 수다가 늘게 된 것이지요. 그가 일하는 환경,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일상,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틈나는 대로 묻고 관찰하며 다시 삶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관심이 그에 대한 배려로 다가갈 수 있도록 마음을 더하는 일을 행하려 노력합니다.

어쩌면 그 행위는 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찰을 더할수록 삶이 대개 그러하듯 모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며 나의 불안감이 덜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탄소 배출의 집에 살고, 저지방 우유를 먹고, 나의 배려를 더해주고, 상대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우리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며 최근 읽은 김지수 작가의 신간 속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도움과 민폐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생을 포개어 가는 것.” 결국 인생은 각자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서로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