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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대한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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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이라는 의미다. 또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둘 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떠나는 것은 자연의 흐름과 닿아 있어 ‘예견된 슬픔’일 수 있다. 하지만 늦게 온 사람이 순서를 뒤바꿔 떠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척은 그 어떤 슬픔보다도 ‘참혹한 슬픔’일 수밖에 없다.

마우나 리조트 참사 추모식 모습. 송봉근 기자

마우나 리조트 참사 추모식 모습. 송봉근 기자

2014년 2월 17일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체육관이 쌓인 눈에 붕괴하는 사고가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과 철제 빔으로 된 지붕이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던 부산외대 학생 10명이 숨지고 214명이 다친 대형 참사였다.

그 후 9년의 세월 동안 참척의 고통 속에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그 슬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참사 9주기였던 지난달 몇몇 부모들의 사연이 잇따라 알려졌다. 울산에 사는 고계석(58)씨는 붕괴 사고 때 딸 혜륜(당시 18세)양을 잃었다. 고씨는 부산외대 아랍어학과 신입생이던 혜륜양의 사망 보상금으로 나온 6억원 가운데 4억원을 남태평양 섬나라인 바누아투에 학교를 지어달라며 기부했다. 바누아투 정부는 이 돈으로  ‘국립 혜륜유치원·초등학교’를 세웠다.

고씨는 “기독교 신자였던 혜륜이 일기에 ‘세계를 돌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혜륜이는 일찍 떠났지만, 딸 이름을 딴 교육시설을 바누아투에 지으면 그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지인을 통해 곧 개학할 바누아투 중·고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고씨는 나머지 2억원도 부산외대에 기부했다.

여러 명의 후배를 구하고 자신은 숨진 이 대학 미얀마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고(故) 양성호(당시 24세)씨의 어머니 하계순씨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도 최근 지역사회에 9000만원 상당의 기부 물품을 전달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두 부모의 참척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 참혹한 슬픔을 승화시켰다.

당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참척의 고통, 그것에 대해 이제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평생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