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이라는 의미다. 또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둘 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떠나는 것은 자연의 흐름과 닿아 있어 ‘예견된 슬픔’일 수 있다. 하지만 늦게 온 사람이 순서를 뒤바꿔 떠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척은 그 어떤 슬픔보다도 ‘참혹한 슬픔’일 수밖에 없다.
2014년 2월 17일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체육관이 쌓인 눈에 붕괴하는 사고가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과 철제 빔으로 된 지붕이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던 부산외대 학생 10명이 숨지고 214명이 다친 대형 참사였다.
그 후 9년의 세월 동안 참척의 고통 속에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그 슬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참사 9주기였던 지난달 몇몇 부모들의 사연이 잇따라 알려졌다. 울산에 사는 고계석(58)씨는 붕괴 사고 때 딸 혜륜(당시 18세)양을 잃었다. 고씨는 부산외대 아랍어학과 신입생이던 혜륜양의 사망 보상금으로 나온 6억원 가운데 4억원을 남태평양 섬나라인 바누아투에 학교를 지어달라며 기부했다. 바누아투 정부는 이 돈으로 ‘국립 혜륜유치원·초등학교’를 세웠다.
고씨는 “기독교 신자였던 혜륜이 일기에 ‘세계를 돌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혜륜이는 일찍 떠났지만, 딸 이름을 딴 교육시설을 바누아투에 지으면 그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지인을 통해 곧 개학할 바누아투 중·고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고씨는 나머지 2억원도 부산외대에 기부했다.
여러 명의 후배를 구하고 자신은 숨진 이 대학 미얀마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고(故) 양성호(당시 24세)씨의 어머니 하계순씨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도 최근 지역사회에 9000만원 상당의 기부 물품을 전달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두 부모의 참척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 참혹한 슬픔을 승화시켰다.
당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참척의 고통, 그것에 대해 이제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평생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