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값 내려도 요지부동…‘커필레이션’ 요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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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직장인 이재원(43)씨는 점심값으로 2만원쯤은 각오한다. 식사비로 1만~1만5000원이 보통인데, 커피값이 5000원이라서다. 커피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식후 한 잔’이 오랜 습관이라 바꾸기 어렵다. 그나마 하루 한 잔은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해결하고, 한 잔 더 마실 일이 생기면 값싸고 양 많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이용한다. 이씨는 “최근 물가 상승으로 커피값도 많이 올라 이젠 편의점 커피, 봉지 커피로 갈아탈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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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5000원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식 물가 부담도 더 커졌다. 지난해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 업체가 줄줄이 커피값을 인상하면서다. 최근엔 커피 원두 수입 가격이 내려갔는데도 커피 가격이 요지부동이라 ‘커필레이션(커피+인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달 28일 커피 업계의 스몰 사이즈(354~360㎖) 기준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가격을 분석한 결과 스타벅스·할리스·앤제리너스·파스쿠찌·투썸플레이스 등은 4500원으로 나타났다. 폴바셋은 4700원, 커피빈은 5000원이었다. 가격 인상의 총대를 멘 건 업계 1위 스타벅스다. 지난해 1월 7년 6개월 만에 아메리카노 가격을 400원 인상했다. 그러자 경쟁 업체가 잇따라 300~400원씩 올렸다.

가장 대중적인 아메리카노 대신 다른 커피 메뉴를 200~700원 올린 업체도 많았다. 아메리카노는 4000원대가 ‘대세’지만 카페라테의 경우 스타벅스 5000원, 폴바셋 5700원, 커피빈 5800원 등 5000원대가 보통이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 커피값을 올렸기 때문에 당장 추가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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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커피 물가에 유독 민감한 건 한국이 손꼽히는 ‘커피 애호국’이라서다. 국내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18년 기준 연간 353잔에 달한다. 세계 평균(132잔)의 3배 수준이다. 정부가 커피 물가 잡기에 나선 이유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커피 원두(생두) 수입 시 부가가치세(10%)를 면제했다. 같은 해 8월부턴 원두 수입 시할당 관세(기본 관세율보다 낮은 관세 적용) 0%를 적용해왔다.

세금 혜택을 준 결과 지난해 5월부터 ㎏당 7000원대를 유지하던 생두 수입 가격이 지난해 10월 정점(㎏당 7401원)을 찍고 올 1월에는 5613원(지난해 10월 대비 -24.2%)까지 떨어졌다. 문지인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외식산업과장은 “올해 1분기 이후부터 가격 내림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며 “최근 문제가 된 소주 물가처럼 커피 물가도 들썩이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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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카페 커피값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지난해 대형 카페 브랜드가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면, 최근엔 ‘가성비’ 덕분에 인기를 끈 저가형 커피 브랜드가 가격을 인상하는 추세다. 이디야 커피는 지난해 12월, 매머드 커피는 올 1월 각각 커피 가격을 200~700원씩 인상했다. 이디야 아메리카노 한 잔(532㎖)은 3200원, 매머드 커피 한 잔(610㎖)은 1600원이다. 남양유업은 편의점용 커피 제품인 프렌치카페 3종 가격을 3월 1일부터 100~200원 인상한다.

커피 원두 가격이 내리는데도 카페 커피값이 그대로인 건 원두가 커피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다. 업계에선 커피 한 잔당 원두값을 500원 정도로 본다. 게다가 관세 혜택은 원두 수입업자에게만 해당한다. 서울 송파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장모(54)씨는 “로스팅한 원두를 들여오는데 가격이 내려가지 않아 관세 혜택을 체감하지 못한다”며 “임대료·인건비·물류비는 물론 우유·설탕·빨대·플라스틱 컵 등 물가가 다 올라 커피값을 인상할 요인밖에 없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원두 수입의 23%를 차지하는 브라질이 4~5월 커피 수확기를 앞두고 작황이 나빠질 전망이다.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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