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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아들 출신고 교장 “학폭, 법률가의 시장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학교폭력 사건 뒤에는 법적 다툼과 판결만 남기가 일쑤인데, 피해·가해 학생의 화해와 치유를 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다녔던 강원도의 한 자율형사립고 A교장은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미 학교폭력은 법률가들의 시장이 됐다는 얘기가 많지 않나”라고 하면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 변호사는 아들의 고교 시절 학교폭력 사건이 불거지며 사퇴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A교장은 사건 발생 당시 교감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A교장은 “학교는 사안을 인지하면 매뉴얼대로 처벌한다”며 “특별히 뭔가 더 하거나 덜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 변호사 아들의 ‘신상 털기’에 대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학생인데 사안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변호사 아들은 2017년 고교 입학 후 1년 가까이 동급생 피해자에게 언어 폭력을 가했다.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학폭위)를 열고 전학 처분을 결정했다. 당시 이 학교 교사는 “정씨 부모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선도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아들의 전학 처분에 불복한 정 변호사는 행정심판,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9년 4월 전학 조치가 정당한 것으로 결론 났다.

가해 학생 전학으로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A교장은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이 사안 뿐 아니라 현 학교폭력 제도가 학생을 전학 보내면 그걸로 ‘끝’”이라며 “학생들이 화해하고 용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부분은 우리 사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A교장은 정 변호사 사례처럼 학교폭력이 부모가 나서는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아쉬워했다. 학교폭력 사실이 인정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졸업 후 2년까지 기록이 남기 때문에 가해자 학부모가 행정심판·소송으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총 325건의 가해학생 불복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승소율은 17.5%(57건)지만 진학에 불리할까 우려하는 학부모로서는 ‘불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학폭위 심의와 조치 과정에서 갈등 조정, 진정한 사과, 화해와 치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상담·교육프로그램이 충실히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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