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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잘 헤어졌다"…이지선 학생, 23년 만에 교수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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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일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지선 교수는 벌써 학내 유명인사다. 길을 걸으면 학생의 ‘셀카’ 요청이 들어오고, “교수님, 화이팅!” 소리도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달 28일 ‘화이팅’을 외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과 즉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장진영 기자

1일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지선 교수는 벌써 학내 유명인사다. 길을 걸으면 학생의 ‘셀카’ 요청이 들어오고, “교수님, 화이팅!” 소리도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달 28일 ‘화이팅’을 외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과 즉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장진영 기자

혈중알코올농도 0.35%의 만취한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던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4학년 ‘이지선 학생’은 그날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고 당시 기준 안면 장애와 지체 장애 1급을 진단받았다. 2000년 7월 30일의 일이었다. 40번 이상의 대수술을 견뎌냈지만, 이전의 얼굴과 손가락은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23년, 이지선 학생이 ‘이지선 교수’가 되어 이화여대에 돌아왔다. 1일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다. 이 교수는 ‘내가 받았던 도움만큼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며 전공을 바꿔 미국 보스턴대·컬럼비아대에서 재활상담학·사회복지학 석사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한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첫발을 뗐고, 23년 만에 모교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사고를 극복하고 꿈을 찾아간 과정을 담은 자전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 『꽤 괜찮은 해피엔딩』 등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장진영 기자.

장진영 기자.

오는 2일 ‘장애인복지론’ 첫 수업을 앞둔 이지선(45) 교수를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모교로 돌아왔다.
“(모교의 교수로 오는 건) 너무 하고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소원이었다. 지난 1월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 감격의 시간이었다.”
23살 사고 이후 23년이 흘렀다. 첫 번째 인생만큼 살아온 두 번째 인생은 어땠나.
“덤으로 얻은 삶이 벌써 그만큼 됐다. 쉽진 않았으나, 남들 생각만큼 어렵고 힘들지만도 않았다. 하루하루가 선물이었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지금도 계속 수술을 받나.
“일주일 전에도 받았다. 얼굴 수술 자국이 오그라든 부위에 다리 피부를 떼서 정리하는 수술이었는데, 첫 수업 앞두고 또 수술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별생각 말자!’고 받아버렸다.”
몇 번째 수술이었나.
“안 센지 꽤 됐다. 40번쯤까지 세다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멈췄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도 아닌데(웃음). 수술을 계속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건강하고, 수술해줄 의사도 있고, 더 쓰기 편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니까 거기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지난해 낸 『꽤 괜찮은 해피엔딩』 에서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썼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나.
“사고 후 2년쯤 지나자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만 나를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를 본 건 사실이지만, 피해자로만 살진 않았으니까. 그때부터 ‘사고를 만났다’고 썼다. 그 순간부터 계속 사고와 헤어지기 시작했다. 그 일은 더 이상 나를 대단히 괴롭힐 수 없다는 태도로!”
사고와 잘 헤어지는 방법이 있을까.
“많은 학자가 얘기하는 ‘다시 쓰기’다. 내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달리하면 사고의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그 후에 내가 얻은 것들이 있다고 깨달으면 사고와 멀어질 수 있다. 불행이 찾아와도 다음 시간을 잘 살아가기 위한 열망과 기대가 있다면 다시 쓸 수 있다.”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사고로 회자하는 게 불편하진 않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을 완전히 바꾼 사건인 건 사실이니까. 물론 누가 대뜸 사고 얘기부터 꺼내면 ‘다음 20년 얘긴 언제 하지’ 싶긴 하다(웃음). 사고 이야기를 제삼자처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의 생존자에게.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을 거다. 동화 속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Happily ever after)’ 같은 엔딩은 아닐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분명히 괜찮은 해피엔딩을 맞을 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누군가와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면서 사고와 잘 헤어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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