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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서만 충격 테러…이란 여학생 700명 또 독가스 공격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딸을 살리고 싶으면 제발 학교에 보내지 마세요.”

이란의 한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는 딸을 옆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딸의 팔과 다리를 꼬집어보지만 하나도 느끼지 못한다며 울먹였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란 주요 도시에선 지난해 11월 말부터 3개월간 30여개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보이는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해 약 700여명의 10대 여학생이 중독됐다. 아직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피해 여학생들은 호흡기 질환, 메스꺼움, 현기증, 피로감, 마비 등의 크고 작은 증상을 겪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란 테헤란주 남부 도시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독성 가스를 마신 학생들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쓰러지고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지난달 28일 이란 테헤란주 남부 도시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독성 가스를 마신 학생들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쓰러지고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AP통신은 “일부에선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폐쇄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면서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사상 처음으로 여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독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테러 공격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첫 피해 사례는 지난해 11월 30일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25㎞가량 떨어진 콤에서 발생했다.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콤은 보수 성향 성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란의 주요 종교학교들이 있는 대표적인 종교 도시다. 이곳의 한 음악학교에서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했고, 18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후 수도 테헤란, 중부 이스파한, 북서부의 아르데빌, 서부의 보루제르드 등으로 확산했다.

지난달에는 보루제르드의 최소 4개 학교에서 194명의 여학생이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일어난 독성 가스 사건은 지난 28일 테헤란 인근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벌어졌고, 최소 37명이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소셜미디어(SNS)에는 수많은 여학생이 하이얌 여학교 건물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피해 여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염소 등 세정제 냄새가 난다고 설명했다. 콤의 한 학교에 다니는 엘라헤 카리미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썩은 계란 냄새 같은 악취가 강하게 났다”며 “눈이 붉게 충혈됐고 구역질이 나서 보건실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 경찰 당국은 독성 가스 중독을 고의성이 있는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많은 학교가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겨울철에 천연가스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추정했다. 하지만 계속 비슷한 사건이 여학교에서만 일어나고 여학생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당국은 고의적인 범죄행위 가능성이 있다면서 수사를 지시했다.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부 차관은 “여러 여학생이 독극물에 중독된 이후 일부 사람들이 모든 학교를, 특히 여학교를 폐쇄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알리 레자 모나디 국회의원은 “여학생들의 교육을 막으려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라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말부터 이란 주요 도시 여학교에서 독가스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1일 현재 사망자는 없지만 700여명이 크고 작은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된 여학생이 병원에 입원한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지난해 11월말부터 이란 주요 도시 여학교에서 독가스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1일 현재 사망자는 없지만 700여명이 크고 작은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된 여학생이 병원에 입원한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독성 가스 물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이러스나 미생물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페드람 파카이엔 이란 보건부 대변인이 전했다.

3개월 넘게 무분별한 독성 가스 공격이 이어지면서 학부모들은 대정부 시위에 나섰다. 지난달 초에는 콤 주지사 사무실 앞에서 100여명이 “딸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한 아버지는 “두 딸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뿐”이라고 외쳤다. 또 다른 학부모는 온라인 수업 전환이나 수업 연기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학생만 공격하는 이유와 배후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지난해 발생한 ‘히잡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광범위한 히잡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많은 여학생이 히잡을 벗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히잡을 쓰지 않은 한 이란 여성이 지난해 10월 26일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량 위에 올라 반정부 시위를 뜻하는 의미로 두 손을 치켜들었다. 이날은 지난해 9월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숨진 지 40일째 되는 날로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나와 시위했다. AFP=연합뉴스

히잡을 쓰지 않은 한 이란 여성이 지난해 10월 26일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량 위에 올라 반정부 시위를 뜻하는 의미로 두 손을 치켜들었다. 이날은 지난해 9월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숨진 지 40일째 되는 날로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나와 시위했다. AFP=연합뉴스

이번 공격의 배후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등과 같은 이란 내 극단주의 강경 보수파 소행 가능성이 제기된다. 개혁 성향 정치인 자밀레 카디바르는 “이란의 통치 체제를 ‘탈레반식 국가’와 같이 바꾸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1년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학생들의 중고교, 대학 교육을 전면 금지했다.

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바시즈 민병대원들이 화학 가스가 담긴 통을 여학교에 던졌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현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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