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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 "대리인 통해 기록물 열람"...정부 "제3자 열람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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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대통령기록관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측이 노 전 대통령 관련 기록물 열람을 위한 대리인을 지정하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상 제3자인 대리인 열람권 범위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재단은 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호 기간 만료된 8만4000여건 기록물 

1일 대통령기록관과 노무현재단 등에 따르면 재단은 지난 1월 16일 오상호 전 재단 사무총장을 유족을 대신할 열람 대리인으로 지정해줄 것을 대통령기록관에 요청했다. 오 전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부 때 의전비서관을 지냈다. 대통령기록관엔 노 전 대통령 지정기록물 8만4000여건이 보관 중이다. 지난달 25일 보호 기간 15년이 만료됐다.

대통령기록관은 ‘열람대리인 지정 요청서’가 접수되면, 15일 안에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은 이 절차를 밟지 않았다. 고재순 재단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대리인 열람 권한 범위 등 시행령이 미비해 대리인을 지정할 수 없다. 시행령 보완 후 대리인을 지정하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권양숙 여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개관식 행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림을 들고 웃고 있다. 연합뉴스

권양숙 여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개관식 행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림을 들고 웃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재단 "이해하기 힘들어" 

재단은 지난달 16일께 법률대리인을 통해 대통령기록관에 공식답변을 요청했고, 답변이 없자 같은 달 27일 보도자료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고 사무총장은 “향후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료연구와 기념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대리인 지정을 요청한 것”이라며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정부 운영, 정책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기록관이 열람 대리인 지정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20년 불거졌던 '대리인 논란' 

대통령기록물법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 개정됐다. 전직 대통령 유고 시나 의식불명으로 대리인을 지정할 수 없는 경우 민법에 따른 가족이 대리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듬해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을 고쳐 대리인 지정에 따른 방문 또는 사본제공이란 ‘열람 방법’은 규정하면서 ‘열람권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 전직 대통령 유고 이후 유족 측이 열람 대리인 지정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무회의 자료사진. 연합뉴스

국무회의 자료사진. 연합뉴스

정부 "제3자 열람이 맞는지 논란" 

정부는 대리인 지정범위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 본인이 생산·작성한 기록물에 대한 (본인의) 열람권은 당연히 인정된다”며 “하지만 대통령 본인이 아닌 가족이 지정한 대리인은 제3자다. 이런 대리인이 (민감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을 보는 게 맞는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앞서 2020년 법 개정 때도 정치권에서 대리인 논란이 이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구체적인 대리인 열람권 범위와 대리인을 지정하는 방법을 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가족'은 민법을 준용하는 만큼 대통령 부인과 자녀 등 유족 여러 명이 각각 열람 대리인을 지정하면, 국가기밀 등이 담긴 대통령기록물 열람권자 범위가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정부측 판단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열람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고 사망하면 가족 중 특정한 1명만 대리인을 지정해 열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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