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04주년 3ㆍ1절인 1일 노동당 기관지를 통해 일본을 맹비난했다. 한국과 달리 3ㆍ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지 않은 북한이 3ㆍ1절을 계기로 강한 대일(對日) 메시지를 발신한 것을 놓고 급속한 한ㆍ미ㆍ일 공조 강화에 대한 경계감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이날 기사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거론하며 “특대형 국가범죄로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일제의 만행은 한 민족의 멸살을 노린 것이었다”며 “엄청난 죄악의 장본인인 일본은 지난날을 성근히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우리 인민의 상처 입은 가슴에 칼질을 해대며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이 필독해야 하는 노동신문을 통해 반일 감정을 고취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ㆍ미ㆍ일 삼각 공조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한ㆍ미ㆍ일 공조가 급속히 강화되면서 최근 북한은 일본을 사실상 미국에 버금가는 ‘적’으로 규정하며 반일 메시지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한ㆍ미ㆍ일 3국의 안보 공조를 북한 정권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식량난을 겪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무기 개발을 지속하는 데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고, 한국을 상대로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보도에서 “온 나라 강토가 민족의 피로 물들여졌던 날, 무장한 원쑤(원수)들과는 오직 무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철의 진리를 새겼다”며 핵ㆍ미사일 개발과 무차별적 도발에 대한 명분을 내세웠다.
신문은 또 “(일본은) 범죄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과거청산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해보려고 모지름을 쓰고 있다”며 “우린 일제의 대학살범죄를 끝까지 철저히 계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강제징용 관련 해법을 둘러싸고 진영간 이견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말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은 한국과 달리 3ㆍ1절을 국경일이 아닌 단순 기념일로 격하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이 굳이 3·1절을 계기로 강한 반일 메시지를 낸 배경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3월 달력엔 3ㆍ1절이 별도 기념일로 표기돼 있지 않다. 3ㆍ1절을 항일 독립운동의 효시로 보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위해 조작한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독립운동의 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은 3ㆍ1절을 ‘3ㆍ1 인민 봉기 투쟁’으로 명명하고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이 평양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주장을 주민들에게 주입해왔다. 실제 이날 보도에도 “1919년 3월 1일 12시 종소리 신호를 기점으로 평양 장대재의 운동장에 각계 각측 군중이 모였다”며 3ㆍ1 만세 운동의 중심이 평양이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3ㆍ1절까지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북한 때문에 2019년 3ㆍ1절 100주년 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던 적도 있다.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남북 공동 기념식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미온적 반응을 보이다 결국 3ㆍ1절 100주년을 1주일여 앞둔 그해 2월 21일 이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공동기념행사 개최는 시기상 어렵다”는 공식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의 고위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3ㆍ1절 공동 기념식의 불발 배경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3ㆍ1 운동에 대한 남과 북의 심각한 인식 차를 보지 못하고 시작부터 이벤트성 행사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과도 관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