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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데 정신과는 부담스러워"…이래서 3~5배 큰 이 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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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사원 주민영(가명·27)씨는 최근 거래처와 상사 사이에 끼어 지속적인 업무 스트레스를 겪었다. 주씨는 “원래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식은땀이 나고 말이 빨라지는 등 긴장이 더 심해졌다. 심호흡도 해보고 껌도 씹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주씨에게 지난달 포털 블로그 하단의 광고문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 긴장 많고 스트레스 많으면 복용해봐.’ 불안과 우울에 효과가 있다는 영양제 광고였다. 호기심에 검색해봤더니 후기가 좋았다. 2만 5000원을 지불하고 2개월치를 샀다.

“우울하다면 써봐”…우울 산업이 뜬다

우울·불안과 관계된 서비스나 제품은 2030이 주로 이용하는 인스타그램ㆍ트위터ㆍ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며 성장 중이다. 그래픽 남윤우 인턴

우울·불안과 관계된 서비스나 제품은 2030이 주로 이용하는 인스타그램ㆍ트위터ㆍ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며 성장 중이다. 그래픽 남윤우 인턴

‘우울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우울·불안에 도움이 된다는 영양제, 상담가 연결을 도와주는 플랫폼, 정신건강 관리를 도와준다는 애플리케이션 등이 중심이다. 전문 심리 상담사를 매칭해주는 앱 ‘마인드카페’ 운영사인 ‘아토머스’ 김규태 대표는 “지난 3년간 매출이 매년 3배씩 성장했다”고 말했다. 명상·심리검사·상담사 코멘트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앱 ‘마인들링’을 운영하는 ‘포티파이’ 문우리 대표는 “지난해 10월 구독제 서비스를 내놓은 뒤 월 매출이 5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건강기능식품산업현황’에 따르면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테아닌’의 국내 판매액은 2017년 약 20억 4000만원에서 2021년 78억 2000만원으로 5년간 약 4배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병원이나 오프라인 상담센터가 아니라, 영양제나 온라인 플랫폼 등 ‘산업’을 찾는 건 심리적·물리적 장벽이 비교적 낮다고 느껴서다. 지난해 12월 ‘마인드카페’를 통해 심리 상담을 받은 강모(27)씨는 “예민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병원에 갔다가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나. 따로 시간을 내서 방문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며 “상담을 받고 나니 한결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말했다. 주민영씨도 “옛말 말이긴 하지만 진료 기록이 남아있으면 안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비싼 진료비도 내키지가 않고, ‘내가 회사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반발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영양제 2주분을 2만 5000원에 구매한 서다혜(28)씨는 “혼자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시도해 본 후에 해결되지 않으면 정신의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병원과 일상 사이…전문가 사이에선 긍·부정론 공존

‘우울 산업’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악화한 정신건강 지표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 수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35.1% 증가했다. 불안장애 환자 수는 같은 기간 32.3% 증가했다. 지난 20일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보고서 2022’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의 ‘부정 정서’가 전년(2021년)보다 0.3점 증가한 4.0점으로 2019년 이후 악화하고 있다. 부정 정서는 ‘어제 얼마나 자주 걱정했는지, 우울감을 느꼈는지’를 측정한 값으로 OECD 가이드라인이 권고하는 항목 중 하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 증가에 대해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 상대적으로 힘들 때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 전 세계적으로 종교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현실적이 된 것 등 여러 원인이 있다”고 했다.

우울 산업이 병원과 일상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와 긍정이 공존한다.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시중에 나오고 있는 앱들은 가벼운 정신건강 문제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영양제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불면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없다”며 “그걸 믿고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치료 시기가 미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경우 대면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비대면을 통해 정신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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