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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엔 무관용" 이랬던 이주호 다시 맡는다…엄벌주의 부활하나

중앙일보

입력

2012년 2월 2일 청와대가 마련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학교장과의 대화'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2월 2일 청와대가 마련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학교장과의 대화'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면서 가해자를 엄벌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1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무관용·엄벌주의' 학폭 정책을 만든 장본인이다. 10여년간 완화돼온 학폭 가해자 조치가 다시 엄벌주의로 돌아갈지 주목된다.

‘엄벌’에서 ‘교육적 해결’로…“가해자 인권침해 우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11년 12월 대구에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론이 들끓자,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폭 예방 대책을 발표했다. 이때 초·중·고교생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록하는 방안이 처음 등장했다. 기록 내용은 초등학교 중학교는 졸업 후 5년, 고등학교는 졸업 후 10년간 보존하도록 했다.

학생부에 학폭 가해 사실이 기재되면서 상급학교 입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게 됐다. 고등학생의 경우 공무원·공기업 취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가해 학생의 '낙인효과'와 인권 침해를 우려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일부 교육감이 반대했지만 이 장관은 강경했다. 이 장관은 “학폭 기재를 거부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학폭 가해자 처벌 조치는 완화돼 왔다. 엄벌주의보다 ‘교육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7월 학폭 가해자의 학생부 기재 기간이 2년으로 단축됐다. 반성할 경우 졸업과 동시에 삭제도 가능하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월에는 서면사과·접근금지·교내봉사 등 교내 선도형 조치를 받은 가해자에 한해 학생부 기재를 유보할 수 있게 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학폭 사건은 교내에서 해결하고 학생부에는 남기지 말자는 취지였다.

尹 ‘법치’ 강조…여야 ‘가해자 불이익’ 법안 마련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순신 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순신 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적 해결을 요구해왔지만, 이를 '처벌 약화'로 보는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가 2019년 학생,학부모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9.8%가 학생부 기재 유보에 반대했다. ‘학교폭력 예방 및 재발방지 효과가 약화될 것’(50.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학생 응답자 중에서는 ‘가해 학생의 반성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39.5%)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윤 대통령이 ‘법치’를 언급하며 교육부에 학폭 대책 마련을 주문한 만큼, 11년 전 ‘엄벌주의’가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윤 대통령은 27일 “산업현장에서 법치를 세우는 것처럼 교육현장도 학생·학부모·교사·학교 사이의 질서와 준법정신을 확고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여야도 앞다퉈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학폭 기록을 최장 10년까지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입 정시에서 학폭 등 인성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는 ‘정순신 아들 방지법’을 내놓겠다고 28일 밝혔다. 교육부도 학생부를 확인하는 수시모집 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학폭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엄벌주의 능사 아냐” 반론도 

2020년 서울대 입학요강 중 일부. 교과외 영역에 대해 수능성적에서 1점을 감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자료 서울대

2020년 서울대 입학요강 중 일부. 교과외 영역에 대해 수능성적에서 1점을 감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자료 서울대

다만 현실적으로 가해 학생에게 어떻게, 얼마나 불이익을 줄 것인지 방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 변호사 아들이 정시로 합격할 당시 서울대는 ‘학내·외 징계여부를 감점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감점이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감점을 받았다 해도 교과외 영역에서의 감점은 ‘수능 성적에서 1점 감점’으로 돼 있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1점 감점의 불이익이 당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학폭 감점은 유명무실하게 활용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해 학생의 불이익을 강화하는 대책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엄벌주의만으로는 학폭 예방‧근절 효과에 한계가 있다”며 “학폭위 심의와 조치 과정에서 갈등 조정, 진정한 사과, 화해와 치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상담‧교육프로그램이 충실히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장은 “학생부 기재를 하면 경각심이 생기는 효과가 있겠지만, 일시적 대책에 그칠 수 있다”며 “학폭 예방 교육 1년에 몇 번 하는지 등 형식적인 교육에 머무를 게 아니라 사회·국어 등 교과목에서 충분한 인성 교육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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