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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람 "이낙연은 해냈다"…험지차출론, 3년 전 악몽에 떠는 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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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천하람 당 대표 후보가 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총선 공천권 개혁 방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천하람 당 대표 후보가 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총선 공천권 개혁 방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천하람 후보가 띄운 ‘험지 출마론’이 당내 공방으로 번졌다. 지난달 26일 천 후보가 총선 공천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친윤계 핵심과 현 지도부를 차출 대상으로 꼽자 당사자가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차출자 명단에 오른 주호영 원내대표는 28일 라디오에서 “(천 후보는) 선거구를 함부로 옮기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며 “준비 안 된 선거를 치르는 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천 후보는 대구 수성갑이 지역구인 주 원내대표를 겨냥해 “왜 우리 당 텃밭의 정치인들은 언제까지 (대구) 팔공산만 오르려고 하느냐”며 “수도권으로 오라. 정세균·이낙연은 도전했고 해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호남의 중진이었던 정세균·이낙연 전 의원이 20대와 21대 총선 때 각각 서울 종로로 옮겨 출마해 당선된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을 나경원 전 의원의 지역구(서울 동작을)에 공천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친 천 후보에 대해 친윤계는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다. 친윤 재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총선 공천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며 “공천을 잘해야만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건데, 천 후보는 선명성을 높여보겠다고 아무 얘기나 막 던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2020년 3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2020년 3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경선 과정에서 나온 ‘험지 출마론’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건 여권의 쓰라린 경험 탓이다. 2020년 4월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에선 공천 파동이 벌어졌다. 당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공천관리위원회는 서울 강남 벨트,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등 이른바 텃밭 지역에 대한 물갈이를 시도했다.

당시 김형오 위원장의 통보를 받은 중진들은 ‘험지 출마’와 ‘컷오프’ 갈림길에 놓였고 이종구(서울 강남갑→경기 광주을), 김용태(서울 양천을→서울 구로을), 김재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서울 중랑을), 이혜훈(서울 서초갑→동대문을) 전 의원 등은 전자를 택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모두 처참하게 생환에 실패했다.

반면 험지 차출을 거부하고 공천에서 배제된 중진들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택했다. 권성동·홍준표·김태호·윤상현 의원은 ‘기호 2번’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자력으로 승리한 뒤 훗날 복당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단칼에 잘라내는 것까진 멋있게 잘했지만 자른 것까지만 잘했다는 문제였다”며 “엉뚱한 사람을 공천하니까 결국 총선을 완전히 망쳤다”고 혀를 찼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구를 잔뜩 비워냈지만, 정작 채우는 데는 실패했던 공천 대실패의 기억”이라고 평가했다.

이혜훈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2020년 2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총선 공천에서 '컷 오프' 위기에 직면한 상황을 유승민 의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눈 이혜훈 의원의 메시지창엔 유승민 의원이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에게 보낸 문자로 "이언주나 새보수당이나 통합은 마찬가지인데 이언주는 험지인 경기광명을 피해서 부산으로 단수공천 받고, 이혜훈은 컷오프, 지상욱, 민현주는 수도권 경선, 하태경은 경선..." 이라며 공천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김형오 의장님(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에 원칙이 뭐냐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제 김무성 대표의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문자는 맺었다. 더팩트

이혜훈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2020년 2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총선 공천에서 '컷 오프' 위기에 직면한 상황을 유승민 의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눈 이혜훈 의원의 메시지창엔 유승민 의원이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에게 보낸 문자로 "이언주나 새보수당이나 통합은 마찬가지인데 이언주는 험지인 경기광명을 피해서 부산으로 단수공천 받고, 이혜훈은 컷오프, 지상욱, 민현주는 수도권 경선, 하태경은 경선..." 이라며 공천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김형오 의장님(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에 원칙이 뭐냐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제 김무성 대표의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문자는 맺었다. 더팩트

그렇다고 험지 차출이 늘 미래통합당처럼 실패로 귀결됐던 건 아니다. 일종의 ‘고위험·고수익’ 정치적 도박을 통해 당도 살고, 자신도 산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이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한 뒤 고향 대구로 옮겨 도전을 거듭하던 그는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지만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되는 역사를 썼다. 그는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정치적으로 잘 나갔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가 흔들릴 경우 김부겸 전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천하람 후보가 언급했던 나경원 전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동작을은 험지 출마 승부수가 자주 벌어지는 곳이다. 2008년 총선 때 직전 대선에서 패한 정동영 전 의원이 동작을에서 재기를 도모하자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정몽준 전 의원을 긴급 투입했다. 당시 한나라당으로선 험지였던 그곳에서 정몽준 전 의원이 정동영 전 의원을 꺾으면서 무소속 생활을 오래 했던 정몽준 전 의원은 당내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패한 뒤 이듬해 19대 총선에 불출마했던 나경원 전 의원은 2014년 7월 동작을 보궐선거에 도전해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에게 승리했다. 당내에선 당시 나 전 의원의 승리에 대해 “정치인 나경원의 저력을 다시 보게 된 순간”이라고 평가한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당시 통합민주당 정동영(우)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가 서울 경문고에서 열린 동작구 조기축구대회에 참석해 얘기하고 있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당시 통합민주당 정동영(우)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가 서울 경문고에서 열린 동작구 조기축구대회에 참석해 얘기하고 있다.

험지 출마는 계파 간 알력다툼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 후보도 한때 ‘험지 출마 압박’으로 곤욕을 치렀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시절,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문재인 진영에서 ‘안철수 험지 차출론’이 나오자 그는 “엄청난 자해행위”라며 반발했다.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소장은 “험지 출마는 스스로가 세운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명분이 없으면 아무 감동 없이 정치적 말로를 밟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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