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이상한 김정은의 무모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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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정은의 정책이 달라졌다. 비교적 실용적으로 사회주의를 운용하던 그가 실상과 동떨어진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집권 후 상당 기간 경제발전을 위해 시장을 묵인하고 물질적 인센티브를 활용했지만 이젠 시장을 통제하고 국가가 상업과 무역을 독점하려 한다. 특히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양곡 대부분을 정부가 수매해 국영 판매소에서 팔게 함으로써 식량의 시장거래를 줄이거나 없애려 한다. 이 정책의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다. 끼니 수를 줄이고 쌀 대신 옥수수를 먹는 주민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아사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 쌀의 공급 감소가 한 원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김정은의 엉터리 정책이 시장 생태계와 조정력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정책을 펼까. 시장의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흔히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 정부가 시장을 통제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정책은 코로나 시작 전인 2019년 말에 선언되었다. 김정은은 전원회의 결정문을 통해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 상업을 시급히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수십만 명이 아사하던 1990년대에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장거래를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시장경제가 배급에 기초한 사회주의보다 훨씬 나은 체제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독재자에게 시장은 잠재적 적이다. 시장은 경제엔 도움 되지만 장기적으로 주민 의식을 변화시키고 금력의 힘을 키워 권력을 잠식한다. 코로나 사태가 시장을 조용히 타격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주민 반발이 극심할 수도 있었다.

시장 통제와 양곡 판매 국가 독점
주민들을 국지적 기아로 모는 중
이 국면에 딸을 등장시킨 김정은
스스로 권력 기반 해체하고 있어

김정은의 정책은 식량이 있어도 살 돈이 없게 만들었다. 이전엔 시장에서 돈을 버는 생태계가 존재했었다. 농민은 정부 수매를 제외한 식량을 시장에 내다 판다. 상인이나 무역업자는 식량이 쌀 때 사거나 수입해 가격이 오를 때 팔아 이윤을 챙긴다. 여기에 돈을 대거나 직접 사업을 벌이는 ‘돈주’도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중앙계획 시절보다 모두 훨씬 열심히 일한다. 장마당 환율로 환산한 월급이 1달러도 되지 않는 관료들은 뇌물을 받고 심지어 배급 식량까지 빼돌린다. 그런데 2020년부터 북한 정권은 주민의 생계 원천인 시장과 무역 활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재로 인해 줄어들었던 주민 소득은 더욱 감소했다. 소득원이 다 막히니 돈이 없어 식량을 사지 못하는 가계가 급증한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로 돌아가려 했다면 계획을 통해 주민 소득과 지출을 일치시켜야 했었는데 이 기본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정부의 식량 판매는 국지적 기아 상태를 일으켰다. 정부의 손은 배분의 효율성 면에서 시장을 따라갈 수 없다. 이전엔 밀수가 시장 가격 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지역 간에도 식량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시장이 조정했다. 한 지역에서의 식량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지역보다 가격이 높아진다. 상인들은 휴대전화로 실시간 가격 정보를 확인해 가격이 싼 곳에서 더 비싼 지역으로 신속히 운송한다. 그러나 양곡판매소를 통한 배분은 식량을 적시에 지역 간 골고루 공급하기 어렵다. 행정 절차에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관료주의와 부패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 활동이 통제되면서 지역 간 식량 가격이 큰 차이로 벌어졌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식량난은 잘못된 정책에 의한 인재(人災)에 가깝다.

김정은의 행동도 이상해졌다. 그는 집권 직후에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다. 2020년만 해도 열병식 연설에서 눈물을 보이며 인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랬던 그는 어디로 갔나. 경제는 후퇴하여 고난의 행군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아사자까지 발생한다. 자식을 먹일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참담할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갑자기, 그리고 버젓이 김주애를 등장시켰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또 점점 더 그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스스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허물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에게 핵은 보험 같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생존이다. 밥 먹기도 어려운데 보험이 팔리겠나. 핵 보험을 광고하기 위해 딸까지 동원했지만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정말 세습을 의도한 행동이라면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으로 하나도 이룬 것 없이 기아마저 초래한 그가 잘 먹고 잘 입은 듯한 딸을 데리고 나온 모습을 북한 주민은 어떻게 볼까. 오히려 주민 가슴에 불을 지르는 행동이 아닐까. 이 무모함은 10년 이상 통치한 자신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권력 유지에 유불리를 따지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절박함이 이런 이상한 행동으로 몰고 가는 것인가.

이상한 김정은의 무모한 정책은 체제가 받는 스트레스의 징후다. 향후 북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북한을 치밀히 분석해 시나리오별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역량을 갖추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