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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반도평화만들기

“G7과 어깨 맞댄 한국, 동북아 넘어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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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진우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국판 인·태 전략의 과제

정부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중추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한국 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중추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한국 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이자 글로벌 중추 국가(GPS·Global Pivotal State)로 발돋움하기 위한 구체적 이행 전략 차원에서다. 또한 북핵 문제에 갇혀 한국의 외교 지평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로 국한했던 과거와 달리 대외 정책의 범위를 대폭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인태 전략엔 주요 7개국(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9대 중점 추진 과제가 담겼다.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 구축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 ▶적극적 기여 외교 실시 등이다. 정부는 이 같은 중점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자유·평화·번영 등 3대 비전과 포용·신뢰·호혜 등 3대 협력 원칙을 설정했다.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는 2월 27일 2023년 제1차 한반도전략대화를 개최해 정부의 인태 전략의 방향과 과제를 논의했다. 이날 포럼은 박진(사진) 외교부 장관의 발제와 질의응답 및 토론으로 구성됐다. 박 장관을 포함한 전·현직 관료와 외교·안보·경제·통상 등 각계 전문가 23명이 참석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 도약 위해서는
대외 정책의 범위 대폭 확장해야
높아진 위상 걸맞은 책임 요구돼
동맹 중시하되 대중 마찰 대비를

박진 외교부 장관 기조 발제 요약

박진 외교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우리의 국제적 역할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결과물이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8강 수준의 위상을 가진 국가가 됐다. 윤석열 정부는 인태 전략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외교 공간을 확대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4년 만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10월엔 유엔 인권이사회에 최초로 상정된 중국의 신장 인권 관련 토론을 위한 결의안에 찬성 투표했다. 다음 달 말에는 미국·네덜란드·코스타리카·잠비아 등 각 대륙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공동 주최한다.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로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전환의 신호가 곳곳에 켜졌다. 독일과 일본이 방위비를 증액했고,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선언했다. 한국도 엄중한 글로벌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확장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태 지역은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그 위상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중국과 마찰 가능성 대비해야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 넷째)이 ‘2023년 제1차 한반도전략대화’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이날 포럼엔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오른쪽 여섯째)과 박 장관 등 23명의 전현직 관료와 외교안보 전문가가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 넷째)이 ‘2023년 제1차 한반도전략대화’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이날 포럼엔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오른쪽 여섯째)과 박 장관 등 23명의 전현직 관료와 외교안보 전문가가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박 장관의 발제 직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특히 한국판 인태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국과의 외교적, 경제적 마찰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요 질의에 대한 박 장관의 답변 요약.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2025년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됐다. 중국이 포함된 APEC과 한국판 인태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될 수 있을까.

“APEC은 이 지역의 자유무역을 고취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기구이자 어느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포용 원칙에 부합하는 기구다. 인태 전략과 APEC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한 구체적 내용은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국제정세 속 한국판 인태 전략을 추진할 구체적 방법론은 무엇이고, 인태 전략의 연장선에서 한·미·일 외교경제(2+2+2) 장관회의 추진 가능성은.

“중국은 첨단기술 획득이란 목표 하에 미국과의 경쟁을 심화하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동시에 팬데믹·기후변화 등의 위기가 같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복합 위기 속에서는 세계 각국이 이제 각자도생이 아닌 가치에 바탕을 둔 연대와 협력을 통해 공통의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게 한국의 입장이다. 한·미·일 2+2+2 장관회의는 대찬성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에게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미·일이 안보와 경제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미·중 선택의 돌파구로 인도 활용해야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미국은 경제안보를 근간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국판 인태 전략의 원칙인 ‘포용’과 9개 과제인 ‘경제안보’가 충돌할 수 있다.

“경제안보의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 국익에 직결된다. 우리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 차별적 대우가 이뤄지지 않도록 현명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한국판 인태 전략은 외교부를 넘어 범정부적 이행이 필요하다. 인태 전략을 관장하는 별도의 기구나 체제를 구상하고 있나.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한다는 큰 국정 목표 하에 인태 전략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관련 부처가 힘을 모아야 한다. 범정부적 역량을 모으기 위한 방식과 기구 출범 문제는 검토 중인 사안이다. 다만 인태 전략 추진의 중심이 될 외교부의 직원은 2500명이고,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에 불과하다. 이것은 글로벌 중추 국가와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큰 제약 요인이다. 우리의 높아진 위상을 고려할 때 외교 예산이 최소한 정부 예산의 1%는 돼야 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 사이에서 우리에게 선택이 강요되는 진영 싸움이 벌어질 때의 돌파구로 인도를 생각해 볼 수는 없나.

“미·중 경쟁으로 인한 리스크를 해소하고 협력을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인도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인도가 가진 잠재력과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란 점, 그리고 인도가 미·중과 맺고 있는 관계 모두 한·인도 간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높이는 요소다. 인도는 올해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정상회의에 참여해서 인도가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 외교 지평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인태 전략은 물론 정부의 한·일 관계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이 ‘인권의 보편성’을 매개로 협력을 강화할 수 있지 않겠나.

“한·일 양국이 인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양국의 공동 인식이 형성돼야 과거사 문제도 극복할 수 있고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과 인권과 관련한 많은 의제를 논의하고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G8, G9 올라서기 위한 신뢰 구축해야

질의응답에 이어 진행된 자유 토론에선 높아진 한국의 국격에 맞는 전략 제시와 함께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홍석현 이사장=“우리의 높아진 국격에 걸맞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외교 전략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제 과거의 중견국을 넘어 G8, G9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 G7으로부터 ‘한국을 G8으로 초청해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구애를 받기 위해선 우선 한국에 대한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 신뢰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태도에서 나온다.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국익 역시 과감히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한국이 언제까지 방관자적인 자세로 있을 수만은 없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정부의 인태 전략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공급망 경쟁의 핵심 분야에 있는 기업들의 입장이 세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삼성이 국제적으로 반도체 분야의 강자인데, 문제는 한국에서 삼성 혼자 강하다는 점이다. 대만의 경우 TSMC 등 핵심 기업에 대해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중국과 네트워크를 갖춰 인력 지원도 용이하다. 인건비가 낮아 생산 단가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도 인태 전략을 포함한 대외 정책에 삼성과 SK 등 기업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한용섭 국방대 명예교수=“미국은 팹4(미국·한국·일본·대만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등 최근 주요 이슈에서 미국 내 생산과 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공급망 협력을 통해 얻어내는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한국이 미국의 부품 생산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해야 하고, 지금처럼 한·미 동맹이 좋을 때 우리의 이익을 더 많이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