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대표로 올림픽 나가거라”…할머니와 약속 지킬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재일동포 출신 ‘유도 천재’ 허미미·미오 자매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 허미미(왼쪽)-미오 자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인 둘은 내년 파리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나란히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 허미미(왼쪽)-미오 자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인 둘은 내년 파리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나란히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세계 최강 일본을 꺾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어요.”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 자매 허미미(21)와 허미오(19·이상 경북체육회)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허미미-미오 자매는 태극마크를 목표로 고향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다. 조부모는 모두 한국 국적이다. 자매가 한국을 땅을 밟은 건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두 손녀가 꼭 한국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뜻에 따라 허미미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지난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아직 한·일 이중 국적인 동생 미오는 올해 한국으로 건너와 같은 팀 도복을 입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자매는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나고 자란 일본보다 한국이 편하고 익숙하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라며 웃었다.

언니 허미미(오른쪽)를 메치는 포즈를 하며 웃는 허미오. 김성룡 기자

언니 허미미(오른쪽)를 메치는 포즈를 하며 웃는 허미오. 김성룡 기자

침체 빠진 한국 유도에 혜성처럼 등장

허미미는 침체에 빠진 한국 유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기대주다. 지난해 2월 국가대표 선발전(57㎏급)에서 태극마크를 단 뒤 불과 1년 만에 세 차례나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트빌리시(조지아) 그랜드슬램에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세계 3위 하파엘라 시우바(브라질·8강)를 비롯해 세계 7위 에테리 리파르텔리아니(조지아·준결승) 등 세계적인 강호를 잇달아 메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같은 해 10월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그랜드슬램에선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노라 자코바(코소보)를 꺾고 우승했다.

또 지난달 27일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선 다시 한번 시우바를 물리치고 정상에 섰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무명 선수였던 그가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강호들을 줄줄이 무너뜨리자 세계랭킹이 단숨에 5위까지 올라갔다. 유도계는 “내일 당장 올림픽이 열릴 경우 남녀를 통틀어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가 바로 허미미”라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허미미는 2002년, 미오는 200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도복을 입었다. 둘은 타고난 힘과 운동 센스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허미미는 중3 때 1000여 명(본선·지역 예선 포함)이 출전한 전 일본 중학 유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일본 여자 유도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7체급 중 4체급에서 금메달(52·70·78·78㎏급)을 휩쓴 최강국이다. 그는 고교 시절에도 줄곧 전국 톱3 안에 든 특급 유망주였다.

현조 할아버지인 허석의 순국기념비 옆에 선 허미미(왼쪽)-미오 자매. 둘은 “최근에서야 삼일절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사진 경북체육회

현조 할아버지인 허석의 순국기념비 옆에 선 허미미(왼쪽)-미오 자매. 둘은 “최근에서야 삼일절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사진 경북체육회

지난 1월부터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동생 허미오도 일본 고교랭킹 1위를 지낸 유망주다. 그는 고1 때 출전한 2021년 일본 고교 선수권에서 2, 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일본 유도계는 “천재가 등장했다”며 술렁일 정도였다.

허미미-미오 자매를 영입하기 위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 덕분에 자매는 나란히 경북체육회에 입단했다. 허미오는 당장 이달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생애 첫 태극마크에 도전한다. 그는 “한국의 ‘체력 유도’를 더하면 지금보다 실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면서 “하루빨리 언니처럼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허미미의 주특기는 업어치기, 허미오는 허벅다리 걸기다. 매트에서 둘은 라이벌이자, 동료다. 김성룡 기자

허미미의 주특기는 업어치기, 허미오는 허벅다리 걸기다. 매트에서 둘은 라이벌이자, 동료다. 김성룡 기자

재일동포 허미미-미오 자매는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의 후손이기도 하다.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 선수 등록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허미미의 할아버지인 허무부 씨가 허석의 증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허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지역에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경북 군위군에 순국기념비가 있다.

허미미는 “내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태극마크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허미오는 “초·중·고교 내내 일본 학교에 다녀서 한국 역사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최근 한국 역사 공부를 하다가 삼일절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며 “일본 친구들이 두려워하는 한국 유도의 에이스가 되고 싶다.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스포츠인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미미(왼쪽)는 태극마크를 단 지 1년 만에 한국 유도의 간판 스타로 성장했다. 사진 IJF

허미미(왼쪽)는 태극마크를 단 지 1년 만에 한국 유도의 간판 스타로 성장했다. 사진 IJF

동생 미오,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

허미미-미오 자매는 닮은 점이 많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유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일본체육대, 메이지대 등 유도 강팀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명문 와세다대(스포츠과학부)에 입학한 것도 공통점이다. 허미미는 3학년, 허미오는 곧 1학년이 된다. 둘 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허미미는 지난 학기 대부분 A학점을 받았다고 했다. 동생 허미오는 “고교 시절 내내 반에서 1, 2등을 놓친 적이 없다. 유도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고 했다.

나란히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한 허미미-미오 자매. 김성룡 기자

나란히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한 허미미-미오 자매. 김성룡 기자

둘은 유도는 물론 연애 고민까지 모두 털어놓는 친밀한 사이다. 허미오는 “짝사랑 이야기부터 경기 컨디션에 이르기까지 언니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과감하게 한국행을 결정한 것도 언니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미미는 “우리는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동생의 뛰어난 실력은 내게 동기부여가 된다”고 설명했다.

허미미-미오 자매 자매의 목표는 내년 파리올림픽에 동반 출전해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한국 여자 유도는 긴 침체기를 겪고 있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조민선 이후 올림픽 금맥을 캐지 못했다. 허미미는 “올 초 현조 할아버지 순국기념비 앞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파리올림픽 메달을 할아버지께 바치겠다”고 밝혔다. 허미오는 “언니와 함께 하면 무서울 게 없다. ‘용감한 자매’의 도전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허미미(언니)

생년월일: 2002년 12월 19일(일본 도쿄)
소속: 한국 여자 57㎏급 국가대표, 경북체육회
체격: 1m59㎝, 57㎏
학교: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3년
주특기: 업어치기, 굳히기
수상: 2017 전일본중학선수권 우승, 2022 트빌리시·아부다비 그랜드슬램 금
가족: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허석, 여동생 허미오
취미: 배우 남주혁 주연 드라마 시청
꿈: 파리올림픽 금메달, 남주혁과 일일 데이트
좋아하는 음식: 삼겹살

허미오(동생)

생년월일: 2004년 11월 1일(일본 도쿄)
소속: 경북체육회
체격: 1m59㎝, 52㎏
학교: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신입생
주특기: 허벅다리걸기
수상: 2021 전일본고교선수권 우승
가족: 언니 허미미
취미: BTS 노래 듣기
꿈: 파리올림픽 금메달, BTS 뷔 만나기
좋아하는 음식: 삼겹살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