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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 계약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레퍼토리 확장이 유일한 욕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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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 사냥꾼'에서 원숙한 연주자로 진화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콩쿠르 사냥꾼'에서 원숙한 연주자로 진화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평소에 뭐든 잘 먹는 편이에요. 요즘에는 장어구이가 맛있더라구요. 독일에선 삼겹살이 싸거든요. 베를린 집에서 구워 먹죠. 사이클 선수 출신 개인코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데 운동을 엄청 시켜요. 비행기 탈 때 덜 피곤한 팁도 알려주고요. 바이올리니스트는 하체가 중요하다며 집중훈련도 받았죠.”

쇼팽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와 4년만에 듀오 콘서트 #'콩쿠르 사냥꾼'에서 원숙한 연주자로…연주·녹음 일정 빼곡 #지난해 판 즈베던과 뉴욕 필 야외 콘서트 5만 청중 열광 #파비오 루이지 지휘 닐센 협주곡 6월 발매 예정

만나면 기를 빼앗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기운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3)는 후자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24일 만났다. 건강관리 비결을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2016년 몬트리올 콩쿠르와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연속 준우승하며 ‘콩쿠르 사냥꾼’으로 불렸던 그녀는 ‘콩쿠르 졸업’ 후 한결 원숙해진 모습이었다. 이틀 전인 22일,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라파우블레하츠와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듀오 콘서트를 치른 그녀는 “4년 만에 듀오 연주라 더 친해진 만큼 발전된 케미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젠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김봄소리는 201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가 끝난 뒤 라파우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만나기 전엔 “성격을 모르니 진공상태 같은 무결점 연주가 떠올라 무섭게 느껴졌다”고 했다.

김봄소리는 항상 자신감 넘치는 비결에 대해 "연습을 제대로 안 했을 때도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연주자의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김봄소리는 항상 자신감 넘치는 비결에 대해 "연습을 제대로 안 했을 때도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연주자의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천사가 따로 없더군요. 라파우는 신기할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에요. 한국에서도 유럽의 시간에 맞춰 지내겠다고 했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거든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렸대요. 연주회 끝나고 밤늦게 고깃집에 갔는데 사순절이라고 김치랑 도토리묵만 먹더군요.“

2위 입상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지난해 10월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가 열린 폴란드 포즈난에서 김봄소리의 인기는 여전했다. ‘봄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폴란드 사람들의 음악사랑은 대단해요. 비에니아프스키는 곡이 어려워 두려운 작곡가였는데 한 번 인연을 맺고 나니 자꾸 폴란드와 연결되네요. 시마노프스키 4중주단 멤버가 제 매니저가 됐고요. 폴란드 작곡가들 곡이 편안하고 표현하기 자유롭게 느껴져요. 요즘 빠져있는 바체비치는 현대적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요. 시마노프스키·파데레프스키·카를로비치의 낭만적인 협주곡도 좋고요.”

김봄소리는 2019년부터 여름에는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올해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독일 피아니스트 파비안 뮐러와 연주한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상주음악가,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상주음악가로 연주했고, 지난해 야프 판 즈베던이 지휘하는 뉴욕 필과 다섯 차례 파크 콘서트에서 협연하며 5만 뉴요커를 열광시켰다. 판 즈베던과는 올해 서울시향 협연도 예정돼 있다.

“판 즈베던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라 긴장됐었는데 편하기도 해요. 오케스트라를 기가 막히게 다루더군요. 귀가 정말 좋아요. 야외인데도 실내처럼 소리가 들리게 지휘해요.”

김봄소리는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봄소리는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 필과는 콜로라도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에서도 협연했다. “고지대라 숨쉬기 힘들었어요. 전날 조성진씨가 연주하며 숨이 가빴다고 말한 대로였어요.”

김봄소리는 녹음 일정도 빼곡하다. 대표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 중이다. 2019년 라파우와 드뷔시, 포레, 시마노프스키를 녹음했는데, 영국 그라모폰지가 "직선적이고 열정적이다. 마호가니 색채의 저음현과 달콤한 종처럼 노래하는 고음현이 대조를 이룬다”고 평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말에는 DG의 ‘버추얼 콘서트’ ‘음악의 순간’ 시리즈의 비디오 녹화를 위해 라파우 블레하츠와 연주했다.

“녹화 끝나고 저녁 식사 때 사장님과 프로듀서가 계약서를 들고 오셨어요. 꿈만 같았죠. DG는 연주자들에게는 바이블 같아요. 자신들의 목록을 확장할 거시적인 레퍼토리를 좋아해요.”

2021년 잔카를로 게레로가 지휘하는 브로츠와프 필하모닉과 비에니아프스키의 ‘전설’,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 등 명곡들을 담은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 앨범을 냈고,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한 덴마크 국립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닐센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는 6월 발매된다.

“닐센 교향곡 전곡 음반에 들어가는 연주예요. 파비오 루이지가 제게 ‘이 협주곡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얘기하더군요. 거장인데도 솔직하고 음악만 생각하는 분이에요. 다음 음반 계획은 아직 비밀인데 협주곡 두 곡이 담겨요. 올해 녹음할 예정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묻자 김봄소리는 “부모님이 방목형이어서 편하게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늘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선택했다. 연습을 열심히 안 했을 때도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길은 안 걷는 게 낫다. 열정이 있어야 기쁨도 느낀다”고 답했다.

김봄소리는 인터뷰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필하모닉의 빈·에센 투어에 동행한다. 9월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가 지휘하는 라디오프랑스필과 파리 데뷔, 런던 BBC프롬스 데뷔에 이어 할리우드볼에서 LA필 협연, 파보 예르비 지휘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닐센 협주곡 연주, 제임스 개피건 지휘 피츠버그 심포니, 헤이그 레지덴티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데뷔,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와 협연 등이 예정돼 있다.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를 하고 나니 보이는 게 달라졌어요. 확장되는 느낌이더군요. 지금은 레퍼토리를 많이 늘리는 것이 유일한 욕심입니다. 30대 안에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베토벤 소나타 전곡연주를 하고 싶어요.”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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