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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文특보' 출신 문정인 사의...세종硏은 예산 전용 의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교부 등록 국가정책연구재단인 세종연구소(세종연)의 문정인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세종연은 매년 5억~10억원의 예산을 빼돌린 의혹으로 최근 외교부의 감사를 받았는데, 문 이사장의 사의 표명은 이와 관련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 이사장은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 출신이다.

28일 세종연에 따르면 문 이사장은 27일 세종연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종연은 곧 이사회를 열어 문 이사장의 사임을 의결할 계획이다. 세종연 관계자는 "문 이사장이 그만 둔 이유는 세종연이 최근 외교부로부터 예산 유용에 대한 감사를 받게 된 여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종연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해 말에 이어 지난주까지 두 차례나 이례적인 감사가 이뤄졌다"며 "특히 세종연구소 연구 용역이 상당수 끊기는 등 직·간접적 압박이 이어지며 연구소의 미래를 위해선 본인이 자리에서 물러나는게 좋겠다는 판단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최근 1주일간 세종연의 교육비용 추계 방식과 회계자료 등을 제출받아 위탁교육 과정 전반의 문제점을 점검했다. 단순한 회계 처리상의 오류가 아닌 불법적인 예산 전용으로 드러날 경우 이사장과 소장 등 책임자에 대한 형사 고발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타깃은 세종연구소 '국가전략연구과정' 

외교부는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공공기관 직원 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세종연의 ‘국가전략연구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 교육연수 프로그램은 국정 운영의 핵심 리더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1995년 시작됐다. 주로 관리자급 공무원이 교육연수에 참여한다.

국가전략연구과정 수강 비용은 1인당 1900만원으로, 매년 100명 안팎의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수강한다. 약 19억원의 수강료에 더해 외교부가 지원하는 간접비까지 포함하면 전체 예산은 20억~22억원 수준이다.

외교부는 세종연구소가 공무원 위탁교육인 국가전략연구과정을 운영하며 ㄱ 비용을 부풀리고 남은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중앙포토]

외교부는 세종연구소가 공무원 위탁교육인 국가전략연구과정을 운영하며 ㄱ 비용을 부풀리고 남은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중앙포토]

외교부는 국가전략연구과정 예산 중 불용예산이 매년 5억~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세종연은 수강 비용을 현실화하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예산을 남겨 이를 직원들이 사용하는 PC 구입 등 집기 비용과 인건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이번 감사의 주요 확인 대상이 됐다고 한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국가전략연구과정 참가 비용의 경우 인사혁신처가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닌 수강생의 소속 부처·기관이 개별적으로 세종연구소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돈이었다”며 “연구소 자체가 민간 싱크탱크인 탓에 외교부 등의 관리·감독이 소홀했고, 수강생을 보내는 개별 부처·기관의 경우 수강료가 상대적으로 소액인 탓에 비용 처리 문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5억~10억원 규모의 예산을 전용하는 불법이 관행처럼 굳었다”고 말했다.

"재산세·공과금 내고 나면 오히려 손해” 

세종연구소는 매년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국가전략연구과정을 운영한다. 1인당 참가 비용은 1900만원으로, 매년 약 100명이 참여한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전경. [중앙포토]

세종연구소는 매년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국가전략연구과정을 운영한다. 1인당 참가 비용은 1900만원으로, 매년 약 100명이 참여한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전경. [중앙포토]

세종연 측은 국가전략연구과정 예산 전용은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반박했다. 위탁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선 외부 강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진행하는 인건비와 교재비 이외에도 매년 수억원 규모의 ‘간접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년 5억원 정도의 예산이 실제 집행되지 않은 불용 예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이 돈이 교육과정을 위한 연구소 공간 제공과 도시가스요금·전기요금·시설유지보수비 등에 사용됐다는 게 세종연의 주장이다.

세종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가전략연구과정 강사는 163명으로, 지급된 인건비는 7470만원 규모다. 전체 예산의 3% 수준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매년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해외 교육에 숙박료와 항공권 비용이 소요되고, 이들이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건물을 사용하는 데 따른 비용도 상당하다고 한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였던 2021년 2월 임명됐다. 뉴스1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였던 2021년 2월 임명됐다. 뉴스1

세종연은 지난해 연구소 건물과 부지에 대해 31억원의 재산세를 납부했고, 2억900만원의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연구소는 재산세와 공과금 역시 국가전략연구과정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세종연 관계자는 “연구소 운용비용 등 간접비와 잡비를 위탁교육 비용에 반영하지 않은 점을 회계처리상의 문제로 지적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를 용도와 다르게 전용했다거나 예산을 부풀려 돈을 의도적으로 돈을 남겼다고 보는 건 억측일 뿐”이라며 “각종 비용을 모두 포함하면 오히려 예산이 부족해 연구소가 매년 손해를 보는 것으로 계산된다”고 말했다.

물갈이 위한 '표적 감사' 시선도 

일각에선 외교부의 이번 감사를 전임 정부 때 임명된 이사장을 물갈이하기 위한 ‘표적 감사’로 보는 시선도 있다. 문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등 안보정책에 깊숙히 관여했다. 2021년 1월 세종연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정부는 "낙점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문 이사장을 선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종연구소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외풍을 탄다는 인식이 강한 곳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이사장과 소장 등을 임명하면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전직 세종연구소 관계자는 “보수-진보에 관계없이 새 정부 출범 후 외교부는 민간 싱크탱크인 세종연을 사실상의 산하 기관처럼 인식했고, 정부 기조에 100% 동조하고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만을 원했다”며 “그 결과 세종연은 싱크탱크로서의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외교부, 文정부 때 임명된 홍현익 감사 

한편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국립외교원에 대한 별도 감사를 통해 홍현익 원장을 비롯한 일부 소속 교수들의 청탁금지법위반, 외부활동 신고 누락 등을 적발하고 기관주의 조치를 내렸다.

현재 홍 원장은 원장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관 운영과 관리 소홀 등에 대한 책임과 관련 일부 업무에서 이미 배제된 상태다. 외교가에선 홍 원장에 대해선 면직 제청 등 사실상의 해임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 원장은 문재인 정부 말인 2021년 8월에 임용돼 현재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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