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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美 반도체지원금 받으려면 육아대책 마련, 초과수익 공유 약속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초과 수익을 정부에 공유하기로 약속하는 등 엄격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28일부터 기업들로부터 보조금 신청을 받을 예정인 가운데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는 공장 직원과 공장 건설 노동자 등을 위한 보육 지원 방안 제출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내 보육시설 마련 등 육아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워싱턴 마운트레이크 테라스에 있는 포에버 영 탁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내 보육시설 마련 등 육아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워싱턴 마운트레이크 테라스에 있는 포에버 영 탁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보육 지원 방안에는 공장·건설 현장 인근에 사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직원에 직접 육아 보조금을 주는 안 등이 포함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총 390억 달러(약 50조 원)의 기업 지원금을 책정했고 28일부터 개별 기업의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3월 9일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자국 내 제조업을 장려하고 반도체 칩 공급망을 강화하는 법안을 지지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3월 9일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자국 내 제조업을 장려하고 반도체 칩 공급망을 강화하는 법안을 지지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상무부가 이처럼 보육 서비스를 챙기는 이유는 아이 돌봄 문제가 노동자들에게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NYT는 많은 미국인이 어린이집 등 보육 대책이 없어 일터에 가는 대신 집에 남아 자녀를 직접 돌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 기준 미국 35개 주에서 보육 서비스 공급이 잠재 수요보다 약 300만명 부족해 '돌봄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보육 산업 종사자는 코로나 19 탓에 오히려 5만8000명 줄어들었다. 어린이집 교사 중에서도 코로나 19 탓에 일을 그만두고 본인 자녀부터 돌봐야 하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례로 마이크론이 1000억 달러(약 13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투자를 발표한 뉴욕주 시러큐스 지역의 경우 돌봄 수요보다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중인 사라 아델만(왼쪽)은 딸 아멜리아의 어린이집이 코로나로 문을 닫자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돌보느라 분투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중인 사라 아델만(왼쪽)은 딸 아멜리아의 어린이집이 코로나로 문을 닫자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돌보느라 분투했다. AP=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NYT에 "노동력을 더 확보하지 않는 한 반도체 지원법은 성공할 수 없고 보육 서비스 없이는 노동력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어 "향후 10년간 여성 100만명을 추가로 고용하고 훈련해 반도체와 기반 시설 산업에 종사하도록 만들겠다는 국가적 목표를 향해 반도체 제조업체, 건설사 등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아가 오롯이 여성의 몫만은 아니지만, 상당수 가정에서 여성이 육아를 도맡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미 제조업 종사자 10명 중 3명만이 여성이라고 NYT는 전했다. 채드 무트레이 전미제조업협회(NAM) 산하 제조연구소 이사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적은 이유 중 하나가 육아 부담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제조업계는 여성 인재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제조업체는 근로자들을 위해 현장에 24시간 탁아 시설을 두기도 했다. 도요타자동차는 1993년부터 켄터키주 공장에서, 2004년부터 인디애나주 공장에서 이러한 시설을 운영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셋째)이 윤석열 대통령(왼쪽 넷째)과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셋째)이 윤석열 대통령(왼쪽 넷째)과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상무부는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이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올리면 수익 일부를 연방 정부에 공유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구체적인 재정 계획을 제출하면서 연간 실적 전망치도 최대한 정확하게 산출해 미국 정부에 공개해야 한다. 이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더 받으려고 일부러 예상 손실 규모를 과장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향후 5년간 자사주 매입계획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자사주 매입을 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된다. 러몬도 장관은 NYT에 "이렇게(엄격한 요구사항을 내놓게) 되면 기업들은 정말 필요한 기금만 신청할 것"이라며 "혈세가 '주주 주머니 채우기'에 이용되는 걸 막을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이 붙으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 측의 보조금 혜택을 받기 쉽지 않으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혜택을 받으려면 '가드레일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데, 이 경우 중국 등 미국이 정한 '우려 대상 국가'에 10년간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 투자를 할 수 없게 된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건설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단, 부지 등 세부 내용은 미확정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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