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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종이 원료가 되는 폐지, 앞으로는 종이자원으로 부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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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병민 한국종이자원진흥원 이사장

종이는 사실상 대체할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다. 종이는 지난 2000여 년 동안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얽히며 발전해왔다. 처음에는 기록과 정보 전달의 매개로 출발했지만, 티슈, 냅킨 등 생활용품으로, 상품포장·택배상자 등 산업 포장재로, 그리고 ICT 등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복사용지, 감열지 등 다양한 특수용지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기후위기 대응 친환경 대체재와 기초소재의 영역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다. 특히 친환경이 화두인 2023년 현재 종이는 친환경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종이는 본연의 기능을 다 하고 나면 자연분해되거나 재활용 과정을 거쳐 다시 종이의 원료가 된다. 산림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세계 7위의 종이 생산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쓸모를 다한 종이를 재활용한 덕분이다. 2021년도 기준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전체 종이 1160만t 중 약 78%는 재활용된 종이가 원료가 되어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종이의 원료로 재탄생되는 종이를 ‘폐지’라고 부른다. 단어 그대로라면 ‘버려지는 폐기물’이라는 뜻이다. 종이는 버려지지 않는데, 폐지라는 단어 때문에 버려진다는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바로잡아야 한다.

‘폐지’는 일본에서 들어온 ‘고지’라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당시에는 재활용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라, ‘버려지는 종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폐지’라는 단어는 틀린 표현이다. ‘폐지’라는 단어 대신 종이의 원료로 재자원화되는 기능에 맞는 단어로 고쳐 불러야 한다.

폐지를 대신해 사용하고 난 종이, 재활용 종이를 부를 단어를 찾기 위해 제지업계는 대국민 ‘폐지 대체용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연령을 불문하고 공모전에 참여했다. 전문가 및 일반 국민의 참여를 통해 종이의 우수한 재활용성을 알릴 수 있는 ‘종이자원’이 폐지를 대체하는 새 이름으로 선정됐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종이, 종이자원은 종이의 기능에 알맞은 표현이다.

국내 제지기업들은 폐지에 새 이름을 붙여주는 것처럼 종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뿐 아니라, 버려지고 낭비되는 종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들도 전개하고 있다. 제지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재활용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내수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수출주도형 산업 구조로 재편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의 제지산업은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제일 많이 심는 주체 또한 제지기업이다. 종이 사용을 줄이는 일은 환경보호가 아니다. 종이는 높은 재활용성과 환경에 이로운 물성적 특징을 가졌으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종이 생산을 위해 원시림을 훼손하는 행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환경보호’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도 종이 사용이 벌목을 촉진하거나 환경을 파괴한다는 인식을 키우는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산재하며 종이에 대한 오해들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부터 ‘폐지’ 대신 ‘종이자원’이라고 부르자. 사소한 변화가 인식을 전환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종이를 쓰고 버리는 폐기물이 아닌 원료로 순환되는 소중한 ‘자원’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국민적 참여가 필요한 때다. 이제 폐지를 종이자원이라는 더 정확한 새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이러한 변화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제지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이루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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