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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 틈 나면 이 얘기"…김대리도 뛰어든 회사탈출 플랜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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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직장인과 취준생들 사이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최근 직장인과 취준생들 사이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경기도 판교의 3년차 직장인 박모(29)씨는 2년 전부터 ‘취준생을 위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만난 동종업계 팀원 3명과 팀을 꾸렸고, 지난해 5~6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취업 가이드라인을 담은 PDF 전자책을 판매해 458만원(세후 380만원)을 벌었다. 무료 뉴스레터로 모은 구독자 500여명이 전자책 구매자로도 이어졌다. 박씨는 “4명이 돌아가면서 원고를 쓰니 월 3~4시간만 투자하면 되고, 목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부수입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처럼 생업 외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에 매진하는 직장인과 취업 준비생이 늘고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란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들이 팀을 꾸려 수익이나 커리어 향상을 목표로 진행하는 비공식 프로젝트다. 일반적인 부업과 달리, 꼭 수익만이 목적은 아니란 것이 특징이다. 앱·웹 등 서비스 개발이나 뉴스레터·팟캐스트 제작, 온라인에서 창작물이나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과 ‘투잡(two job)’ 사이 중간지대를 아우르는 말로 통한다. 과거 블로그·인스타그램·유튜브 등으로 개인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던 데서 나아가, 보다 체계적인 협업이 이뤄진다. 일종의 ‘미니 회사’ 같은 모습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다룬 관련 서적의 도서정보에 나온 ‘사이드 프로젝트’의 정의. 사진 출판사 더퀘스트·예스24 캡처

사이드 프로젝트를 다룬 관련 서적의 도서정보에 나온 ‘사이드 프로젝트’의 정의. 사진 출판사 더퀘스트·예스24 캡처

사이드 프로젝트 열풍…“취준생 사이에선 신종 스펙”

사이드 프로젝트는 요즘 성장·취업·이직·창업의 ‘필수 스펙’으로 진화 중이다. 최근 한 사이드 프로젝트에 합류한 서울대 사범대생 김유나(22)씨는 “교사가 아닌 정보기술(IT)업계로 진로를 바꾼 뒤로 합류할 프로젝트를 열심히 찾아다녔다”며 “IT업계가 많이 성장하면서 이쪽 취준생이 많아졌는데, IT기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을 중시하다 보니 사이드 프로젝트가 공모전·대외 활동보다 유의미한 스펙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2년차 서버 개발자 정모(29)씨도 “이직 면접 때 10곳 중 3~4곳은 ‘사이드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더라”며 “지난달부터 사이드 프로젝트 두 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회사 일만 하면 관심 있는 기술을 써볼 기회가 적어 경쟁력을 키울 겸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 사례들이 소개되고 팀원 연결 등이 이뤄지는 다능인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 사진 사이드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 사례들이 소개되고 팀원 연결 등이 이뤄지는 다능인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 사진 사이드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비단 저연차만의 흐름도 아니다. 20년차 중소기업 프로그래머 최모(50)씨는 지난 1월 말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1인 가구 커뮤니티를 제작하고 있다. 최씨는 “나는 창업 준비, 팀원들은 협업의 성취감과 포트폴리오 관리, 부수입이 목적”이라며 “팀원은 캐나다 밴쿠버 개발자 커뮤니티와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해 모집했다”고 말했다. 이어 “팀원을 모집하면서 보니 취준생은 기업이 어려워지자 인턴 자리가 없어서, 주니어는 이직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시니어는 기존 세대처럼 정년까지 충성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이들 하더라”고 전했다.

‘관리비 30만원’에도 신청자 3년새 310% 증가

이렇다 보니 최근 1~2년 새 사이드 프로젝트를 매칭해주는 커뮤니티나 플랫폼도 부쩍 늘었다. 커리어리, 디스콰이엇, 사이드 프로젝트, 비사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카페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블라인드 등에서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검색하면 쉽게 관련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 유료 플랫폼 비사이드는 프로젝트를 매칭·관리해주는 대가로 인당 30만원을 받는데도 신청자가 지난 3년간 376명(2020)→631명(2021)→1542명(2022)으로 증가했다. 비사이드를 운영하는 박진이 진지한컴퍼니 대표는 “회사 업무만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사업 트렌드를 쫓아갈 수 없다는 불안이 사이드 프로젝트의 동력이 되고 있다”며 “참가비를 내고서라도 프로젝트를 완수하겠다는 분들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리멤버에서 화제가 된 “사이드 프로젝트를 안 하면 뒤처지는 걸까 불안하다”는 글. 사진 리멤버 캡처

직장인 커뮤니티 리멤버에서 화제가 된 “사이드 프로젝트를 안 하면 뒤처지는 걸까 불안하다”는 글. 사진 리멤버 캡처

전문가들은 사이드 프로젝트 열풍이 ‘불안감’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은 “평생 직장이 없어진 시대에 ‘내 포트폴리오 관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며 “요즘 같이 경기가 안 좋고 365일 소셜미디어(SNS)로 남과 비교되는 불안한 환경에선 뒤처지지 않기 위한 플랜B를 원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직이 보편화하하면서 셀프 브랜딩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결과”라며 “특히 디지털 역량을 과시하면서도,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적이라는 편견에 맞서 협업 경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 사회에서) 시간을 쪼개서라도 앞서나가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됐다”며 “주52시간, 주4일제 등 사회 전반적으로 근무시간 단축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이런 흐름은 한동안 더 빨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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