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평 '딜버트'로 유명한 만화가 스콧 애덤스가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해 언론사 수백 곳으로부터 연재 중단 통보를 받았다. AP=연합뉴스
30년 넘게 미국을 대표해온 만평가의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딜버트(Dilbert)’의 작가 스콧 애덤스(65) 얘기다. 문제는 그의 인종차별 발언. 워싱턴포스트(WP)·뉴욕타임스(NYT) 등 유수의 언론사들이 그의 만화 ‘딜버트(Dilbert)’를 더는 싣지 않기로 했다고 26일(현지시간) 밝혔다. 그외 신문사 수백 곳도 연재를 중단했다.
WP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애덤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백인이어도 괜찮다(It‘s Okay to be White)’라는 문장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흑인이 모집단의 절반을 약간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해당 문장은 2017년 한 웹사이트의 토론 게시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트롤링(상대에게 의도적으로 화를 내게 만드는 행위)을 위해 즐겨 사용하며 유행한 슬로건이다. 애덤스는 ‘문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모르겠다’고 대답한 47%에 대해 “이들이 바로 (백인) 증오 집단”이라며 “백인들에게 흑인들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흑인들이 비흑인을 구타하는 영상을 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고 덧붙였다.

스콧 애덤스(가운데)가 만화 주인공 딜버트 인형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항의가 빗발치자 애덤스는 맥락에서 벗어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유튜브에서 “모든 사람은 차별당하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그룹은 피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튿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합세해 “미국 언론들이 백인에 대해 인종차별을 한 것”이라며 애덤스를 옹호했지만, 언론사들은 “그의 혐오스럽고 차별적인 공개 논평을 용인할 수 없다”며 만평 ‘딜버트’를 지면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애덤스는 지난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인종 차별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0년엔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취소된 것에 대해 “내가 백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지난해 1월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할 때까지 난 흑인 여성이 되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스콧 애덤스는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지지했다. AP=연합뉴스
애덤스를 스타로 만든 ‘딜버트’는 1989년부터 34년 가까이 매일 연재된 ‘직장 생활’ 풍자 만화다. 주인공 딜버트는 지능 지수(IQ) 170이 넘는 천재이지만 사회성이 부족하고 소심해 회사에서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회사엔 사내 정치가 만연하고, 구성원의 능력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만화는 우스꽝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상사, 당하기만 하는 딜버트, 일을 피하는 동료 등을 묘사하며 전 세계 직장인의 공감을 끌어냈다.
만화는 전 세계 65개국에서 25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고, 99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TV에서 방영됐다. 미국에선 ‘딜버트’가 승진이나 실직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회사원을 지칭하는 구어가 됐다. ‘똑똑한 직원보다 무능력한 직원이 오히려 승진하기 쉽다’는 이른바 ‘딜버트 법칙’도 이 만화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는 98년 전미 만화가협회가 수여하는 ‘루벤 상’을 받기도 했다.

만평 딜버트는 직장인의 회사 생활을 풍자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사진 딜버트 홈페이지
애덤스는 95년 전업 만화가가 되기 전 여러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그는 79~86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에 창구 직원으로 입사해 경영 훈련, 통신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했다. 이후 통신 회사로 이직한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자신이 겪은 직장 생활을 토대로 그린 만화가 딜버트였고, 언론사들로부터 연재 제의를 연이어 받으며 95년 전업 만화가가 됐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애덤스는 하트윅 콜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전 세계 부자 순위를 집계하는 웹사이트 ‘더 리치스트’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7500만 달러(약 99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