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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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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칼럼니스트

남정호 칼럼니스트

한국이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몰렸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미국 주도의 나토와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러시아 사이에 끼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주는 바람에 부족해진 포탄을 한국에서 사겠다고 해 상황이 복잡해졌다. 미국은 지난해 말 155㎜ 자주포용 포탄 재고가 줄어들자 한국에서 10만 발을 사들여 부족분을 채웠다. 그러다 최근 다시 구매를 요청했다고 한다.

종전 협상 아닌 전쟁 장기화 초래 #미국도 전쟁 책임에서 못 벗어나 #지뢰 제거 등 인도적 지원 힘써야

 결론부터 말하면 살상용 무기는 지원해선 안 되며, 미국에 포탄을 팔더라도 우크라이나 우회수출  금지란 조건을 달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무기 지원이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적절하지 않은 까닭이다.
 명분부터 보자. 최근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도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항구적 평화를 위한 여건 마련의 유일한 길은 군사 지원"이라고. 영웅으로 떠오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전 1주년인 지난 24일 "우리는 모두를 물리칠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영국·독일·프랑스 등 나토 회원국들이 공격용 무기 지원에 나섰다. 이쯤 되면 종전은커녕 끝 모를 장기전이 될 게 분명하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지만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다"(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  젊은 아들을 가진 우크라이나 어머니에게 젤렌스키의 항전 연설은 어떻게 들렸을까. 이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은 10만~15만 명씩의 사상자를 냈다. 민간인 사상자도 2만여 명에 달한다. 이런 비극을 지속시킬 무기 지원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 절실한 건 종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이다. 그런데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0일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5억 달러의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부추기는 꼴이다.

지난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지원을 재확인하며 무기 지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지원을 재확인하며 무기 지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게 맞다. 하지만 그 근원을 따지면 미국도 전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통독이 추진되던 1990년 미국은 러시아 측에 "나토를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독일 통일을 이뤄냈다. 그랬던 미국이 과거의 소련 연방국이자 러시아 코밑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수용하려 했으니 러시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세계 최고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는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추진되면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며 여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고 역설해 왔던 것이다.
 실리적으로도 무기 지원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한국이 무기를 보내면 무얼 얻을까.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제3국의 일로 한·미 관계에 결정적 변화가 있을까. 또 재건 사업을 한국이 독차지할 리 만무하다. 반면에 무기 수출로 러시아와 척을 지면 265억 달러(약 34조여원)에 달하는 한·러 무역이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또 주변 4강 중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나라가 러시아다. 중국 외에 남북한 간 중재를 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면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하게 들리겠지만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안보와는 별 상관없는 머나먼 곳의 일이다. 지난달 말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가 한 모임에서 "(일본이) 이렇게 우크라이나에 힘을 쏟아도 괜찮은가"라며 "러시아가 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한 데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 미국으로 포탄을 보내는 것이니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영락없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러시아가 바보인가. 우크라이나를 도울 길은 지뢰 제거 등 인도적 방법도 많다.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방조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