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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나토와 협력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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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 한국과 나토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토와의 관계 강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 State, GPS) 구상 아래 한국이 나가고 있는 방향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GPS는 필연적으로 한국이 안보·국방 분야에서 미국과 호주·캐나다·일본·유럽과 같은 파트너 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이끌 것이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이슈에서 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미·중 전략경쟁과 신냉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한국이 선택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이해관계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걸 의미한다.

전략적 모호성은 유효하지 않아
국제무대에선 분명한 선택 필요
가치 공유하는 국가들 편에 서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윤 정부는 지난해 12월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GPS를 지향하는 한국의 국익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포괄적 지역 전략이다. 자유·평화·번영의 비전 아래 포용과 신뢰, 호혜의 원칙을 담고 있으며,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 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이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할 파트너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들은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일본과의 역사적 분쟁을 젖혀두고 한국이 비교적 쉽게 협력할 수 있는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다.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은 다른 국가와의 잠재적 협력은 신뢰와 상호주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하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서해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대한 중국의 공세 강화, 양국 간 가치관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은 안보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기 쉽지 않다. 중국이 한국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다.

한국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은 다양한 안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원한다. 남중국해 및 기타 지역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공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중국·북한·러시아의 사이버 보안 및 기타 위협에 대한 방어 등이 그중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과거 한국은 이러한 문제와 기타 안보 문제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 분열이 심화하고 한국의 파트너인 미국이 더는 전략적 모호성을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나토의 사례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방한 이후 불과 2주 만에 사상 첫 한·나토 군사참모대화가 열렸다. 나토는 지난해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오는 7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포함해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을 초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욱 통합됨에 따라 한국과 나토와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나토는 원칙적으로만 한국과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 한국은 나토의 사이버안보센터 주요 회원국으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하는 데서 한국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한국 첨단기술 기업들은 나토 회원국들이 차세대 군사 장비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의 자산은 나토에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는 중국·북한·러시아 간의 협력이 강화될수록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안보 분야를 포함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토·미국·유럽도 한국이 중·러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는 비현실적이다. 미국도 향후 여건이 조성되면 중국, 나아가 러시아와도 대화와 관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국은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국익과 가치에 따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의 편에 설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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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