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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또 긴축 우려…원화값 18원 급락, 석달 만에 1320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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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긴축 공포’에 27일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주식·채권·원화 값이 동시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달러당 원화 가치는 이날 하루에 18원 떨어지며(환율 상승) 약 석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코스피는 한 달여 만에 장 중 2400선이 깨졌다. 미국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로 긴축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87% 내린 2402.64로 마감했다. 재점화된 긴축 공포에 코스피는 장 초반 1.6% 이상 급락하며 2383.76까지 밀렸다. 오후 들어 낙폭을 줄이며 2400선을 간신히 지켰다. 장 중 2400선이 깨진 것은 1월 20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시가총액(시총) 상위 종목도 일제히 하락했다. 시총 상위 10개 종목(우선주 포함) 중 기아(0.93%)와 네이버(0% 보합)를 제외한 8종목이 하락했다. LG화학(-1.79%)의 하락 폭이 가장 컸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주가도 1% 이상 내렸다.

채권과 원화값도 동반 하락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28%포인트 상승한(채권값 하락) 연 3.683%에 장을 마감했다. 1월 2일(연 3.782%) 이후 두 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1323원에 마감했다. 전 거래일(지난 24일·1304.8원)보다 18.2원 내렸다. 지난해 11월 29일(1326.6원) 이후 종가 기준으로 원화 가치가 가장 낮다.

달러값이 18원 넘게 떨어진 건 미국 물가 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상회한 영향을 받아서다.

전문가 “원화값, 당분간 1300원대 벗어나기 어려울 것”

미국 통화정책이 고물가에 대비해 긴축에 초점을 맞추며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발표한 1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5.4%로 시장 예상치(5%)를 뛰어넘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년 같은 달 대비 4.7%, 전월 대비 0.6%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4.4%, 0.5%)를 웃돌았다. PCE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중요하게 보는 물가 지표로 알려져 있다.

달러 대비 원화값 하락 흐름은 이달 내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1400원대를 기록하다 지난해 말과 올 1월 1200원대에서 안정세를 보인 원화값은 이달 3일(현지시간) 미국 고용지표 발표 이후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비농업 신규 고용 규모는 51만7000개로 나타났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7000개)에 견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실업률도 3.4%로 54년 만에 가장 낮았다. 고용시장 강세는 임금 상승과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이에 최근 미국 고용지표 호전은 시장에서 Fed의 긴축 기조 강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PCE 물가지수 결과는 시장의 긴축 강화 우려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인플레 압력은 크게 둔화하지 않고, 물가를 부추길 수 있는 고용시장이 탄탄한 모습을 보이며 ‘Fed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졌다.

최근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잇따라 Fed가 오는 6월까지 세 차례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음 달 22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시장의 전망도 커지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해처럼 1400원대까지 떨어지진 않겠지만 당분간 약세를 보일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원화 약세는 여전히 높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일부 상품에 대한 가격을 직접 점검하는 등 ‘관치(官治)’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에 한은이 다시 기준금리 인상 페달을 밟아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지낸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는 “당분간 원화값은 하락 추세를 보이며 1300원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에서 환율이 큰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쉽게 올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와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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