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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다음엔 가결" 개딸 "반동분자 색출"…민주당 내전 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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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오른쪽 앞부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투표를 마친 뒤 투표함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오른쪽 앞부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투표를 마친 뒤 투표함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이탈표가 대거 나오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정권을 ‘검사 독재’로 규정하고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려던 지도부의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친이재명(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의 당내 투쟁도 격화될 조짐이다.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이 대표는 표결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본회의장에선 다른 안건 처리가 진행됐다. 이 대표는 2시간이 지난 저녁 7시쯤 본회의장을 나와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는 내용의 짧은 입장을 밝혔다. 이탈표 관련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떠났다. 겉으론 평온함을 유지했지만, 무더기 이탈이라는 예상 밖 결과에 대한 복잡한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압도적 부결을 공언했던 친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 했다”고 토로했다. 강경파인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탈표가 상당해 여러 고민이 드는 결과”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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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비명계에선 “지난해 전당대회 때 지도부를 한쪽이 싹쓸이한 데 대한 평가부터 당 운영 쇄신 요구까지, 이제는 이 대표가 직접 답해야 할 때”(비명계 수도권 의원)라며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이번에도 이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그때는 야당 대표 체포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2선 후퇴 요구도 거론했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당 지지율에 부담이 되는 만큼, 이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포안 표결 전에 이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에서 다수 비명계는 이 같은 주장을 내비쳤다. 친문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사람이 전언 형태를 빌려 ‘이런 주장을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중히 건의했으나 이 대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며 “표결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본인이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퇴진 요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비명계에선 특히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이번에는 모두가 이견 없이 확실히 부결시키자”고 주장했던 5선 중진 설훈 의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의총 직전 이 대표와 독대했던 설 의원은 “부결하고 나면 대표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결단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설 의원은 본회의 직후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물음에 “앞으로 좀 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이, 비명계 공세에도 버틸 가능성 높아

비명계의 공세에도 이 대표는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체포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138명으로 민주당 169석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의석이다. 특히 권리당원 내에서 이 대표 지지세는 두텁다.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 거취 결단 가능성에 대해 “그럴 리 있겠나, 끝까지 가야죠”라고 답했다. “이 대표 스스로 직을 내려놓지 않는 한 당헌·당규상 대표를 끌어내릴 방법은 전혀 없다”(비명계 보좌관)는 말도 나왔다.

친명계도 일단 ‘쇄신’보다는 ‘전열 정비’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신(新)이재명계’로 불리는 김병기 수석 사무부총장은 페이스북에 “전열을 재정비하겠다. 검폭 정권의 폭거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쨌든 부결됐으니 여권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더 단단하고 강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개딸’로 자칭하는 강성 지지층은 권리당원 게시판 등을 통해 ‘수박(겉과 속이 다른 의원을 뜻하는 은어)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는 등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계파색이 옅은 재선 의원은 “표결까지 한 상황에서 이 대표가 물러설 명분이 약하다”며 “반동분자 색출 작업이 시작되면 당내 분란이 걷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호남 지역 의원은 “이탈표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기에 당분간 당내 갈등이 내전 수준으로 격화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은 “사실상 가결”이라고 반색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본회의 직후 “이 대표의 방탄은 허물어졌다”면서 “체포동의안은 사실상 처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깨끗하게 사퇴하고 사법 절차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를 바란다”면서 “민주당 주류도 이제 방탄 국회와 불체포특권을 통해 이 대표를 보호하려는 시도를 오늘부로 그만두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국민 뜻 따른 소신의 결과”

정의당은 류호정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비록 과반에 미달한 부결이지만, 당파적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른 헌법기관들의 소신이 담긴 결과”라며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별도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여권에선 “표결 결과를 놓고 웃을 수만 없는 상황”이란 경고도 나왔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당내 갈등 끝에 이재명 체제가 조기 붕괴하고 이후 새로운 지도부로 총선 체제로 재편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의존한 여권에도 비상등이 켜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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