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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달러’ 재림에 원화가치 하루 18원 ↓…1300원대 고착화?

중앙일보

입력

원화 가치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긴축 강화 조짐과 이에 따른 ‘킹 달러(달러 초강세)’ 재현 가능성에 달러당 원화 가치는 27일 하루에 18원 떨어지며(환율은 상승) 약 석달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의 긴축 종료 시점이 당초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원화값이 당분간 약세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여전히 높은 고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경기 부진이 겹친 상황에서 한국은행과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2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20원선을 웃돌았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20원선을 웃돌았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가치는 1323원에 마감했다. 전 거래일(지난 24일‧1304.8원)보다 18.2원 내렸다. 지난해 11월 29일(1326.6원) 이후 종가 기준으로 원화 가치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달러값이 18원 넘게 떨어진 건 미국 물가 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상회한 영향을 받아서다. 미국 통화정책이 고물가에 대비해 긴축에 초점을 맞추며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발표한 1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5.4%로 시장 예상치(5%)를 뛰어넘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년동월대비 4.7%, 전월 대비 0.6%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4.4%, 0.5%)를 웃돌았다. PCE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주요하게 보는 물가 지표로 알려져 있다.

달러 대비 원화값 하락 흐름은 이달 내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1400원대를 기록하다 지난해 말과 올 1월 1200원대에서 안정세를 보인 원화값은 이달 3일(현지시간) 미국 고용지표 발표 이후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비농업 신규 고용 규모는 51만7000개로 나타났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7000개)에 견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실업률도 3.4%로 54년 만에 가장 낮았다. 고용시장 강세는 임금 상승과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이에 최근 미국 고용지표 호전은 시장에서 Fed의 긴축 기조 강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PCE 물가지수 결과는 시장의 긴축 강화 우려에 기름을 얹은 셈이 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투자증권은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 물가 우려가 재차 현실화하면서 달러 강세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고 이에 따라 원화 약세 흐름을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는 다른 통화와 비교해서도 강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105선에서 거래됐다. 이달 초는 101 수준이었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지난해처럼 1400원대까지 떨어지진 않겠지만 당분간 약세를 보일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원화 약세는 여전히 높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일부 상품에 대한 가격을 직접 점검하는 등 ‘관치(官治)’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에 한은이 다시 기준금리 인상 페달을 밟아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지낸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는 “지난해 정도의 급락은 없겠지만 당분간 원화값은 하락 추세를 보이며 1300원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에서 환율이 큰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쉽게 올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와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한은은 지난 23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며 2021년 8월 이후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멈췄는데, 최근 나빠진 경기 지표를 반영한 결과로 평가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기 어려울 거란 시각이 팽배하다”며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필요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통화당국이 적절한 정책 조합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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