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료제출 거부 노조 세액공제 대상 제외…법개정 없이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시행령과 운영규정만을 개정해 노조비 세액공제 및 국고보조금 등 수천억원에 이르는 직간접적 ‘자금줄’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노조비 세액공제 제한의 경우 혜택을 받는 개별 조합원인 근로자에게 엉뚱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투명성 관련 내용을 브리핑 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투명성 관련 내용을 브리핑 하고 있다. 뉴시스

27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회계 자료를 미제출한 노조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포함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시행령상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가 납부한 회비는 지정기부금으로 분류돼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노조 회계 투명성을 위한 종합보고를 마치고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선 노동조합 조합비 세액공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 아닌 시행령 개정…‘야당 반대’ 우회

특히 정부는 법령이 아닌 시행령만 건드리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회 입법 절차 없이 정부가 직접 개정할 수 있기 때문에 거대 야당의 반대도 피할 수 있다. 고용부는 노조 회계감사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 방안도 이르면 이번 주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노조비 공제세액은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2021년 기준으로 최대 3000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연말정산에서 종교단체 외 지정기부금으로 세액공제를 받아 결정세액이 있는 근로자는 409만 6866명으로, 이들의 공제세액은 3754억 30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엔 노조비뿐만 아니라 공익법인 및 비영리 민간단체, 사회단체 기부금도 포함된다. 다만 당시 전체 노조 조합원 수가 293만 3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가 노조비 납부에 따른 세액공제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 보조금 규제 ‘행정예고’ 

노동단체 및 노사관계 비영리법인 지원사업 운영규정 일부개정안. 관보 캡처

노동단체 및 노사관계 비영리법인 지원사업 운영규정 일부개정안. 관보 캡처

아울러 정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회계자료 미제출 노조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제한하는 운영규정 개정안도 행정예고했다. 고용부가 예고한 ‘노동단체 및 노사관계 비영리법인 지원사업 운영규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보조금 사업신청 시 필수 제출서류에 고유번호증과 함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도 추가된다. 회계 자료 제출 없이는 보조금 신청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구체적인 증빙 방법은 추후 별지 개정을 통해 공고할 예정이다.

고용부가 올해 노동단체 지원 사업에 책정한 예산은 총 44억 7200만원이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거대 노조가 아닌 ‘MZ노조’ 등 신생 노동단체에 예산 50%를 의무 배분한다. 노조 간부 교육이나 국제교류사업 등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도 밝힌 만큼 기존 노조에 돌아갈 보조금 비중은 예년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 개정 없이도 시행령과 운영규정 개정만으로 충분히 규제가 가능한 사안으로 보인다”며 “액수로 보면 보조금보다 세액공제를 통한 지원이 훨씬 큰 만큼 회계 투명성을 지키지 않는 노조에 대한 세액공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라고 밝혔다.

세액공제 제한, 근로자 불똥 우려도 

다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에 직접적으로 지원되는 보조금과 달리 노조비 세액공제는 노조에 가입한 개개인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라서다. 노조와 정부 간 기싸움에 오히려 근로자 피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은경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은 “노조가 잘못한 행위에 대한 불이익이 개별 노조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도 “납세자들에게 세금은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실제로 세액공제 혜택을 제한했을 때 노조보다도 정부에게 비판의 화살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