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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채끝등심처럼 춰보렴"…한국의 정 담았다, 이 남자 몸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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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헌(왼쪽) 유니버셜발레단 예술감독이 지난 6일 발레단 손유희 수석무용수에게 '코리아 이모션' 안무를 지도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유병헌(왼쪽) 유니버셜발레단 예술감독이 지난 6일 발레단 손유희 수석무용수에게 '코리아 이모션' 안무를 지도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채끝등심처럼 춰보렴, 안심처럼 추지 말고."  

무슨 말일까. 유병헌 유니버설발레단(UBC) 예술감독이 종종 한다는 말이다. 이달 초 전 세계 발레 꿈나무들의 올림픽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입상한 선화예고 졸업생 김수민 박상원 학생도 기자와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선생님의 가르침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이 말을 꼽았다. 부드러움에 방점이 찍히는 안심 대신, 채끝등심처럼 쫄깃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춤을 추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6일, 유 감독은 이 말을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들에게도 하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 능동의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다. "부드럽게만, 예쁘게만 추지 말고, 쫄깃하게 액센트를 줘서, 빰빰빠바바바밤!" 3월 17~19일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코리아 이모션'의 리허설 현장이다. 유 감독은 한국 발레계의 산 증인이다. 지난해 12월엔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발레협회 대상도 받았다.

'코리아 이모션' 포스터.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코리아 이모션' 포스터.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연습실을 가득 채운 건 발레의 시그니처인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이 아니라 자진모리 장단의 장구 소리. 이현준ㆍ강민우 수석 무용수들이 투르 앙레르 점프를 한창 뛰는 중이었다. '코리아 이모션'은 유 감독의 오리지널 안무작이다. 정(情)이며 한(恨) 같은 한국 특유의 정서를 서양에 뿌리를 둔 발레의 형태로 풀어낸다. '동해 랩소디'며 '강원, 정선 아리랑'과 같은 다양한 작품을 '코리아 이모션'이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춘향'부터 '심청'까지 한국만의 스토리를 발레로 풀어낸 유니버설발레단만이 선보일 수 있는 무대다.

리허설 뒤 만난 유 감독은 "예술엔 국적이 없다"며 "좋은 예술 작품이라면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누구나 갖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는 답을 내놨다. 그는 이어 "발레는 서양에서 오긴 했지만, 언어가 아닌 몸의 동작으로 전하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원들이 '코리아 이모션' 리허설에 한창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사진작가 김경진

유니버설발레단 단원들이 '코리아 이모션' 리허설에 한창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사진작가 김경진

'코리아 이모션'엔 한국인의 흥을 살리는 파워풀한 남성 군무부터,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을 그리는 애절한 파드되(pas de deux, 2인무)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풍성하다. 2021년 '대한민국 발레축제' 초연에서 호평받은 뒤 수차례 개작을 거쳐 이번 무대에 이르렀다. 유 감독이 항상 들고 다닌다는 안무 노트엔 그가 각 멜로디와 안무를 구상한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했다.

그는 "팬데믹을 보내며 자연스레 그간의 삶을 돌아보고, 한국만의 정서를 전 세계에서 통하는 발레로 풀어내고 싶다는 구상을 했다"며 "한국과 세계를 담아 맛있는 한상차림을 내놓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우동이며 중국에서 온 짜장면과도 잘 어울리듯, 퓨전은 또 다른 맛있는 창작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병헌 유니버셜발레단 예술감독.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코리아 이모션' 안무로 극복했다. 전민규 기자

유병헌 유니버셜발레단 예술감독.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코리아 이모션' 안무로 극복했다. 전민규 기자

퓨전이라고는 해도 세상에 없던 무대를 만드는 건 유 감독에게도, 단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 감독은 "우리네 전통 음악이 사실 발레 동작과 맞추기가 꽤 어렵다"며 "무용수들이 한 마디로 쉴 틈이 없는데, 상체는 한국의 정서를 살리면서 다리로는 발레 스텝을 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안무를 위해 국립무용단이며 한국 전통 무용이며 음악 공연도 틈틈이 다 찾아봤다고.

그는 이어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이 힘들긴 해도 그래서 더 보람과 재미가 있다"며 "무용수들이 잘 따라와 줘서 고맙고, 관객들도 한국의 정서가 세계의 예술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나오는지 직접 오셔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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