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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로 생선 씻고 김장" 목 마른 이 지역 요강 꺼내야했다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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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남 완도군 보길면에서 횟집 사장이 바닷물로 생선을 씻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완도군 보길면에서 횟집 사장이 바닷물로 생선을 씻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바닷물로 음식 재료 손질

지난 23일 오후 전남 완도군 보길도 해변. 이곳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정기월(62·여)씨가 손질해 토막 낸 삼치를 바닷물로 연신 씻고 있었다. 보길도는 지난해 11월 이후 다시 가뭄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식수원은 부황저수지다. 현재 저수율은 18.1%로 급감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500명 보길도 주민들은 군청으로부터 일주일에 이틀만 생활용수를 제한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주민들은 물이 부족해지자 이처럼 바닷물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씨는 “이렇게 해서라도 아껴야지, 안 그러면 물이 부족해 장사·생활 못 한다”고 말했다.

보길도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이월(66·여)씨 역시 “총각무 등 찬(饌) 재료를 씻을 때 바닷물을 쓰다가 마지막 단계에선 수돗물을 사용한다”며 “다른 식당도 비슷하다”라고 울상 지었다.

전남 완도군 보길면의 식당 뒷 공간에 대형 물탱크가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완도군 보길면의 식당 뒷 공간에 대형 물탱크가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한급수에 뚝 끊긴 펜션예약 

물이 귀해 빨래는 언감생심이다. 2주에 한 번씩 바구니에 빨랫감이 차고 넘쳐야 세탁기를 돌린다고 한다. 보길도 펜션 등 숙박업소 10여곳은 개점휴업 상태다. 펜션 업주 박경자(54·여)씨는 “‘제한급수 지역이라 물을 아껴 써야 한다’고 손님에게 안내하면 바로 예약을 취소하기 일쑤”라며 “찾는 이는 없는데 관리비·월세로 매달 300만원씩 빠져나간다”고 한숨 쉬었다.

보길도뿐 아니다. 전남 완도군 노화·넙·금일·소안도 등 4개 섬 주민 1만1500명의 가뭄 분투기도 비슷하다. 파란색 대형 물탱크가 집집이 놓여 있다.

경남 통영 욕지면에 있는 주민 40여명이 사는 작은 섬 '우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말라 15m 아래 바닥이 드러나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 욕지면에 있는 주민 40여명이 사는 작은 섬 '우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말라 15m 아래 바닥이 드러나 있다. 안대훈 기자

바짝 마른 우물 

반대편 경남 통영시 욕지면·산양읍·한산면·사량면 4개 지역 9개 섬 주민 2300가량도 ‘갈증’을 겪고 있다. 4개월째 제한급수가 이어지면서다. 욕지면 부속 섬 우도 주민 40여명의 유일한 식수원은 깊이 15m의 마을 우물이다. 지난달 취재진이 찾았을 때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일부 주민은 지난해 12월 ‘바닷물 김장’을 했다. 당시 3~4명이 바닷가 방파제에 모여 선박 펌프장치로 바닷물을 퍼 올린 뒤 그 물로 배추를 절였다고 한다. 김영래 우도 이장은 “예전에도 가뭄이 너무 심할 때 이렇게 했지만, 또다시 바닷물을 (김장에) 쓸 줄은 몰랐다”며 답답해했다. 우도 주민 문모(80대)씨는 “화장실 변기 내릴 물도 없어 다시 요강을 꺼냈다”며 “어쩔 수 없이 노상 방뇨를 하는 주민도 있더라”라고 귀띔했다.

바닷물이 일부 섞인 콘크리트가 사용된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해변의 석축(길이 87m, 폭 1m) 모습.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해 12월 통영시의 보수 공사 발주를 받은 시공업체가 석축 윗부분을 20㎝ 두께의 콘크리트로 덮는 마감 처리 과정에서 시멘트와 바닷물을 일부 섞은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사진 통영시

바닷물이 일부 섞인 콘크리트가 사용된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해변의 석축(길이 87m, 폭 1m) 모습.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해 12월 통영시의 보수 공사 발주를 받은 시공업체가 석축 윗부분을 20㎝ 두께의 콘크리트로 덮는 마감 처리 과정에서 시멘트와 바닷물을 일부 섞은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사진 통영시

바닷물로 시멘트 반죽  

우도에서는 심지어 바닷물로 시멘트를 반죽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한 건설업체가 태풍 힌남노 여파로 파손된 길이 87m, 폭 1m짜리 석축 보수작업을 하면서다. 이 업체는 석축 윗부분을 20㎝ 두께의 콘크리트로 덮는 마감 처리 과정에서 시멘트와 바닷물을 일부 섞은 콘크리트를 부었다.

통영시는 최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석축 안전성 점검을 벌였다. 통영시 관계자는 “바닷물이 섞인 콘크리트 타설 때 부식될 수 있는 철근 등 자재는 쓰이지 않은 거로 확인됐다”며 “워낙 씻고 마실 물이 없을 정도로 가뭄이 심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남·경남 섬주민 1만5729명 비상급수

남부지방이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섬 지역은 특히 심각하다. 국가가뭄정보포털에 따르면 26일 기준 전남 완도·진도·신안, 경남 통영 등 4개 도서지역 1만5729명이 급수차나 급수선으로 생활용수를 공급받는 비상급수 중이다.

‘육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안심할 땐 아니다. 인구 143만명의 광주광역시도 제한급수를 검토하고 있다. 광주시가 식수원으로 쓰고 있는 동복·주암댐 저수율은 각각 30% 미만으로 떨어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6월 제한급수를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공중화장실. 수도꼭지를 올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진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공중화장실. 수도꼭지를 올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진 안대훈 기자

최근 기상청이 발표한 ‘2022년 기상 가뭄 발생 특성’에 따르면 지난해 남부지방 기상 가뭄 발생일수는 227.3일이다. 역대 최장 기록으로 광주·전남지역이 281.3일로 가장 길었다. 1974년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가뭄이라고 한다. 광주·전남지역의 최근 1년(2022년 2월 2일~2023년 2월 1일) 누적 강수량은 896.3㎜로 역대 두 번째로 적다.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642.3㎜)은 평년 대비 108.6% 수준이나, 광주·전남은 66.8%, 경남은 81.3%에 그치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올해 벼농사 어쩌나  

모내기 철인 5~6월까지 가뭄이 이어질 경우 농업용수가 바짝 마를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전남·경남의 국내 논벼 생산량은 107만2647t으로 전체의 28.5%를 차지했다. 가뭄은 작황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일단 올 4월까지 내리는 비의 양이 평년과 비슷해 이후부터 가뭄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뭄은 연례행사다. 우도에서 약 5㎞ 떨어진 욕지도에선 지난해 3월 ‘기우제’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욕지댐 저수율은 10%대로 뚝 떨어진 상태였다. 관광객이 찾는 식당이나 펜션은 급한 대로 비상용 소방수까지 끌어다 썼지만 해갈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주민 대표들은 섬에서 가장 높은 천왕산(높이 393.5m) 꼭대기에 올라 돗자리를 깔고 제사상을 차려야 했다.

한상봉 통영 욕지면 주민자치위원장은 “물 부족이 이렇게 심각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매번 지자체에 지하수 관정개발을 요청했는데 잘 안 됐다. 예산을 마련하는 사이 비가 내리면 문제가 해결돼버리니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뭄 상황이 풀릴 때까지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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