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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방송’ 아닌 ‘공정방송’ 할 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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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야단맞을 고백이다. ‘주간 음주’(Weekly Alcohol)라는 ‘편향보도’ 언론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 주간지는 “옐로우 저널리즘에 입각해서 조잡한 편집, 과장된 충격, 개인의 비리와 취약점, 스캔들을 주 내용으로 확대 해석, 왜곡, 은폐, 축소보도를 일삼으면서 사건이 없으면 사건을 만들어서라도 음주를 둘러싼 독자들의 알권리와 즐길 권리를 충족시켜줄 각오”를 표방했다.

학생들에게 미래의 언론기자를 부추기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글쓰기를 권장도 하고 강요도 하던 필자가 지도교수였다. 발행인, 편집인, 기자를 합해 제작 인원은 3명, 1997년 2학기였다. 알코올 냄새와 취기가 완연한 이색적인 제호와 편집 방향(?) 덕분에 출발은 웃음과 호기심을 유발하며 성공적이었다. 그 무렵 우리 학과에는 학생들의 언론을 향한 열정으로 다양한 언론의 창간, 종간이 빈발했다. 극소수 인원, 빈약한 재정, 얇은 독자층, 짧은 발행기간은 공통적이었지만 취재와 편집은 자유로웠다. 그런 실험 언론을 향한 질풍노도의 격정에도 불구하고 ‘주간 음주’는 서둘러 폐간을 결정했다. 이유는 음주에 대한 알권리가 중요해도 ‘옐로우 저널리즘’은 진짜 언론이 아니고, 독자들에게 도움은커녕 흉기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편파방송 내건 김어준 유튜브
갈등·분노·배타의 언어 걱정돼
“거짓말·선동은 민주주의 파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화를 소환하는 것은 김어준씨가 밝힌 유튜버 방송의 변 때문이다. 그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시작하면서 ‘편파방송’을 공식 선언하고,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그리스시대 소피스트가 부활해도 펼치기 어려운 궤변을 토했다. 시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교통방송(TBS)에서 특정 정치인들을 옹호하고 특정 정당을 일방 지지하고 특정 정파의 논리를 선전하는 편향방송으로 하차한 이가 편파방송을 다짐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향상과는 무관한 진영논리를 전파하는 선정주의 방송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기력을 소진해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한때 김씨를 ‘주류의 전복을 통해 명랑사회 구현을 꿈꾸는 통찰과 해학을 겸비한 선구자’로 평했던 강준만 교수는 얼마 전에 김어준의 방송이 ‘객관성·공정성·정치적 중립성’을 버리고 극단적 편향성을 향해 질주했다고 비판했다. 『정치 무당 김어준』이라는 자극적인 책에서 “정치는 김어준을 타락시켰고, 김어준은 정치를 타락시켰으며, 김어준으로 인해 정치 무속의 세계가 열렸고, 방송도 타락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사석에서나 할 수 있는 거친 말을 공영방송 마이크에 대고 배설하듯” 내뱉는 김어준에게 “공영방송의 마이크를 넘겨준 TBS와 그 행태를 보호해 주는 방송 시스템”이 지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현행 방송 제도가 만든 ‘방송의 정치화’ 덕분에 (그가) 방탄 혜택을 누렸다는 지적도 했다.

그의 유튜브 방송이 슈퍼챗(생방송 실시간 후원금)을 통해 벌어들인 1월 누적 수입은 약 2억7000만원. 구독자는 2월 현재 120만을 오르내린다. 2016년 9월부터 진행한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5년간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호오를 막론하고 거대한 방송 권력인 것이다. 극단의 팬덤 정치인과 신봉자들의 단골 마이크 역할에 머무는 편파방송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방송을 해야 할 이유이다.

편파방송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공정방송은 그렇지 않다. 편파방송은 이분법적인 가치로 우리 편은 옹호하고 다른 입장은 적대시하면 된다, 갈등·분노·배타·부족주의의 혐오를 낳더라도 개의치 않는 ‘거저먹기 방송’인 것이다. 그러나 공정방송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함께 방송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 편견, 선동, 무례, 아니면 말고 식의 허언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방송이다. 방송을 장난처럼 대하지 않고 공동체의 통합과 미래를 위한 소통과 공감을 모색하는 진지한 자리로 여긴다. 방송의 생산·유통·이용에 경천동지의 변화를 가져온 디지털 시대이다. 이미 “거짓말, 선동, 혐오의 언어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저널리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 리핀스키) 유튜브 방송은 차고 넘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편파방송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정방송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