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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연금 폭탄’ 째깍거리는데 부채 규모는 왜 숨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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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산으로 가는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행정부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의 위원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나, 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 5년을 허송세월해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려면 보험료를 2%포인트 더 올려야 함에도 연금을 더 지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악화하는 연금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연금개혁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연금 보험료 올려야 하는데도 “지급 늘려야” 목소리 나와
4대연금 미적립 부채 2800조원 넘는 현실이 보이지 않나
“노인만을 위한 나라인가” 미래부담 질 청년들 불만 폭발
공무원·군인연금 재정추계도 미공개…개혁할 뜻 없는 듯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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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가 발표된 후 청년층 반응을 들어봤다. 청년층에서 거론되는 말들을 충남대 황세웅 학생과 미국 UC샌디에이고 김강진 학생이 보내왔다. “노인만을 위한 나라” “국민연금은 국영 루나코인” “젊은 세대에게 부담 떠넘기지 말고, 인구가 제일 많고 돈도 제일 많은 현 연금 수령자들에게도 공평하게 부담시켜라” “연금 받는 사람도 고통을 분담해야 개혁이지, 자기들 더 받으려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등등,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이다. 세대 간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5차 재정계산에서는 2023년 출산율을 0.73으로 채택했으나, 2050년 이후 출산율을 1.21로 가정한 데 대해 젊은층이 비판적이라고 한다. 너무 낙관적인 수치라는 것이다. 기대수명 가정은 2060년 이후 90세가 넘어간다. 한 해 25만 명도 태어나지 못한 세대가 한 해 70만∼100만 명 태어난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데도, 자신들 연금 더 받겠다고 연금 지급률을 높이겠다고 하니 청년층이 폭발하는 거다.

기초연금 고령자의 30%, 가난하지 않아

2020년 43.7세인 중위연령이 2070년이면 62.2세가 된다. 반면 유럽연합(EU)의 2070년 중위연령은 48.8세로, 2019년보다 5.1년 늘어나는 데 그친다. 이동학 전 민주당 청년최고위원은 “개혁의 시점은 이미 한참 지났다.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서 계속 미루기만 하니 세대 간 형평도,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도 기대 난망이다”고 말했다.

연금 지급률을 더 올리자는 사람들은 노인 빈곤율과 짧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고려하면 재정 안정보다 노후 소득 강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9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적립금이 상황 판단을 어렵게 한다.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아도 2040년에 1755조원이나 보유할 텐데, 왜 재정 안정만 강조하느냐는 거다.

이런 혼란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노인 빈곤율은 ‘평균의 함정’에 기인한다. 노인 빈곤 문제의 핵심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집단 내 극심한 소득 불평등에 있다. 부자 노인과 극도로 가난한 노인이 양극단에 있어 평균하면 전체 노인의 빈곤율이 높게 나타날 뿐이다.

부동산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 초반으로 대폭 하락한다. 빈곤에 처한 노인 인구 20%가 전체 인구 중 가장 빈곤한 집단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인 70%에게 똑같은 기초연금액을 지급한다. OECD 상대 빈곤율 개념을 적용할지라도 기초연금 수급자의 3분의 1(약 200만 명)은 빈곤 노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모든 노인이 빈곤한 것처럼 호도한다.

2041년 국민연금 재정수지 적자 발생

국민연금 예상 가입 기간이 27년에 불과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경우, 가입자 대다수가 50년 후에도 빈곤에 노출될 것이라는 주장은 어떠한가. 1970년 출생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데이터베이스(DB)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가입자의 예상 가입 기간은 19.4년에 불과하다. 반면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 가입자의 예상 가입 기간은 34년에 달한다. 만 59세로 묶여있는 의무납입연령을 점진적으로 64세까지 상향하면 가입 기간 40년을 채울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인 접근 대신 50년 뒤에도 평균 가입 기간이 27년이라는 주장으로, 모든 국민연금 가입자가 빈곤에 노출될 것처럼 호도한다.

독일은 여유자금이 2~3달 치에 불과한데도 연금을 잘 운영하는데, 적립금 900조원을 가진 나라에서 웬 호들갑이냐, 기금 소진을 앞세운 공포 마케팅하느냐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2041년 재정수지 적자 발생 이후 14년 만에 적립금 1755조원과 적자액 47조원을 합한 1802조원이 연금 지출로 사라진다. 그 기간 보험료 수입과 기금 투자 수익을 제외했음에도, 매년 130조원이 넘는 금액이 빠져나간다. 이를 제대로 보려면 미적립 부채(Unfunded accrued liability) 개념이 필요하다. 기금 소진 시점을 몇 년 연장한 데 불과하면서도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했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밝힐 수 있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성공 원인은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적립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라며 국민에게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적연금의 미적립 부채 개념을 활용하라는 세계은행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에서 미적립 부채 사용이 금기시되었다. 그동안의 복잡한 정치 상황 탓이다.

연금 미적립 부채 GDP의 135% 달해

1138조원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 외에, 정부가 발표하지 않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가 최소 1500조원, 사학연금은 16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 규모로 추정해도 4대 공적연금 미적립 부채가 2800조원을 넘어 2021년 명목 GDP(2072조원)의 135%에 달한다. 모든 공적연금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제도로 운영되며 매년 미적립 부채가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미적립 부채 현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공개하던 공무원·군인연금의 재정추계보고서가 어느 시점부터 비공개되고 있다. 관련 위원회 논의 내용도 비밀이다. 제도 운용 비용을 부담하는 국민과 전문가·국회·언론이 내막을 모르게 운영하는 공무원·군인연금의 대수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연금 수익비에서 15%나 손해 본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2021년 재직자 126만 명 대상의 공무원연금 운영원가가 26조9000억원이다. 공무원과 국가가 부담한 총액이 14조원(운영원가의 48%) 수준이다. 2021년 한 해에만 해도 운영원가의 상당 부분이 결국 미래 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바로 그 대목이다. 2021년 기준으로 1138조원에 달하는 공무원·군인연금 연금 충당부채가 생겨난 배경이다. 매년 막대한 충당부채가 전가됨에도 우리만 억울하다는 것이 공무원 사회 분위기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보장급여에 대해서는 연금 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회보장급여의 충당부채는 우발 채무이기에 정부 대차대조표의 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발 채무이기에 정부 대차대조표의 주석사항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표해야 하는 이유다.

연금 충당부채는 결국 세금으로 부담

옥동석 재정정책학회장(인천대 교수)은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42.1%(2019년 기준)로 OECD 평균 109.5%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GDP 대비 49.3%이기에, 이를 합치면 일반정부부채비율은 91.4%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연금 충당부채는 국가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확정된 빚과 다르며, 국가 간 부채 규모 비교 시에도 연금 충당부채는 제외하고 있다”며 “연금 충당부채를 전액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1년 한 해에만 공무원연금 운영원가의 상당 부분이 국민 세금으로 전가될 것임에도 “전액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교묘한 표현으로 본질을 흐린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급해야 할 확정 부채이기 때문에 대차대조표 부채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옥 교수의 논문과 다르다.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제대로 안 하면 모든 연금의 충당부채 공개를 위한 국민 1000만 명 서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