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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제 모국어…근면함이 오늘의 나를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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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24일 유명 레이블 데카에서 데뷔앨범 ‘리슨’을 발매한 정재일. [사진 유니버설뮤직]

지난 24일 유명 레이블 데카에서 데뷔앨범 ‘리슨’을 발매한 정재일. [사진 유니버설뮤직]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40)이 유니버설뮤직 산하 유명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에서 데뷔앨범 ‘리슨(Listen)’을 발매했다. 지난 24일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만난 정재일은 “앨범 ‘눈물꽃’을 발표했던 2004년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때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접고 ‘싱어송’은 안 되지만 ‘라이터’를 해볼까 생각했었습니다. 20년 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카에서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재일은 장르를 넘나드는 연주가이자 작곡가다. 17세 때 베이시스트로 밴드 ‘긱스’에 참여한 그는 패닉·박효신·아이유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고, 영화 ‘기생충’ ‘옥자’ ‘브로커’ 등의 음악을 담당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데카 데뷔앨범 ‘리슨’의 중심은 피아노다. 정재일은 “피아노는 저의 모국어다. 말 하는 것보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리슨’에서 정재일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피아노로 자연을 보는 시선을 들려준다. 청아하면서 진중한 피아노 소리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레인보우 스튜디오에서 하루 일곱 시간씩 열흘 동안 녹음했다. 음반 커버에는 파도치는 밤바다가 담겼다. 오래 협업해온 장민승 작가의 사진이다.

앨범에 담긴 여섯 곡을 들어보면 간명하지만 감정의 온도가 변하며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면에선 요동치는 그의 영화음악과 닮아있다. 표제작 ‘리슨(Listen)’은 데이비드 란츠를 연상시키지만 가슴을 철렁하게 하며 슬픔을 자아낸다. ‘오션 미츠 더 랜드(Ocean Meets The Land)’는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선율이 떠오른다. 어둡고 묵직했던 곡은 이내 가면을 벗고 신선한 공기를 쐬는 것처럼 희망에 도달한다.

앨범의 마지막곡 두 곡은 ‘마비’를 뜻하는 ‘애네스씨지아(Anesthesia)’와 ‘미학’을 뜻하는 ‘에스씨지아(Esthesia)’를 나란히 대비시켰다.

“미(美)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느낄 수 없는 거래요. 열린 마음으로 살아봐야죠. 지구가 하는 말을 못 들어서 팬데믹과 전쟁을 겪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떠올랐어요.”

그는 절실함과 근면함이 오늘의 자신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기회를 잡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었고요. 예술가들에게 결여될 수도 있는 근면함이나 책임감으로 25년 넘게 무대 뒤에서 서포트 했습니다. 음악을 통한 통·번역가라고 할까요. 그게 제 삶이고 익숙한 제 하루입니다. ‘오징어게임’으로 명예를 얻었지만 기본적인 삶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정재일은 류이치 사카모토, 케틸 비외른스타드 등 수많은 장르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클래식 음악만 국한해 보면 모차르트 ‘레퀴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울시향 신임 음악감독 야프 판 즈베던이 “정재일과 꼭 작업하고 싶다”고 한 데 대해 그는 “그분들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경지에 맞출 수 있을지 두렵지만 해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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