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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가스공사 최악 경영난…커지는 전기·가스료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전이 지난해 32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6일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뉴스1]

한전이 지난해 32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6일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속도 조절’을 언급한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두고 정부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물가는 내릴 줄 모르고 서민층이 느끼는 공공요금 부담도 크다. 하지만 그간 요금 인상 충격을 덜어준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공기업 경영 악화에 주주도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 달가량 남은 2분기 요금 결정에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지난 24일 공시된 지난해 결산 실적에 따르면 한전은 32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 연료비·전력구입비가 전년 대비 35조원 넘게 치솟으면서 역대 최악 실적에 직면했다. 가스공사도 2021년 1조8000억원이던 민수용(주택용·영업용) 미수금이 지난해 8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폭등에도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한 결과다. 부채 비율(연결 기준)도 전년 대비 121%포인트 증가한 500%로 악화했다. 가스공사는 “향후 안정적인 천연가스 도입을 위해 미수금 해결과 재무 개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공기업 경영 정상화 등을 고려해 전기·가스요금의 단계적 현실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올겨울 ‘난방비 폭탄’ 이슈에 크게 덴 뒤 서민 물가 안정, 공공요금 숨 고르기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정책 선회 양상을 보였다. 지난 15일 윤 대통령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1월 소비자물가도 공공요금 인상 여파로 5.2% 오르면서 3개월 만에 상승 폭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다음 달 말께 결정될 2분기 전기·가스료도 대폭 올리긴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가스료는 난방 수요가 많은 1분기에 동결된 데 이어 2분기도 별 변화가 없으면 누적 미수금이 10조원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다. 전기료도 1분기(㎾h당 13.1원)보다 높은 인상 폭을 기록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올해 전체 인상 요인(㎾h당 51.6원)을 채우긴 요원해진다.

올해 에너지 공기업 경영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이들 기업 안팎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가스공사 소액주주는 공사 측이 지난 24일 미수금 때문에 ‘무배당’ 결정을 내린 걸 두고 소송 채비에 나섰다. 이날 가스공사 소액주주연대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공사가 도시가스 소매업체를 상대로 미수금 반환, 채권 추심 등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미수금 방치를 이유로 집단소송까지 나서겠다고도 예고했다.

한전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말 한전채 발행 한도 상향을 담은 한전법 개정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요금 인상 대신 채권 추가 발행 등으로 운영 비용을 충당하면 향후 이자 부담은 점점 커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3.5% 수준으로 내려갔던 2~3년물 한전채 금리도 최근 4%대로 다시 올랐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적자가 더 심해지면 한전 주주들도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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