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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골칫거리…8년 전 문제없던 '시진핑 자료실' 논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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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중앙도서관 2층에 자리잡은 106.9㎡(32평) 크기의 ‘시진핑(習近平) 기증도서 자료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14년 한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를 방문해 도서 기증을 약속하며 이듬해 개관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양국 관계가 순탄치 못한 데다 청년층 사이에 반중(反中) 정서가 비등하면서 자료실 폐지 주장이 계속되자 서울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2층에 위치한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의 모습. 김홍범 기자

지난 2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2층에 위치한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의 모습. 김홍범 기자

지난 17일 오전 서울대 행정동 앞에선 “서울대 시진핑 자료실을 폐쇄하라”는 구호가 연이어 나왔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트루스포럼, 공자학원 실체알리기 운동본부 등 단체들은 “2014년 시 주석의 서울대 방문은 중국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는 희망이자 약속이었지만, 현재의 중국은 공산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에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을 단 자료실이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2014년 서울대를 방문한 시 주석은 ‘1만 권의 책을 읽으면 1만 리를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담아 도서 9297권과 영상자료 755점 등 총 1만52점의 자료 기증을 약속했다. 서울대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2015년 10월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2층에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을 열었다. 2018년 방한한 류옌둥(劉延東) 부총리 등 중국 주요 인사들이 이 자료실을 찾았고 수차례 중국 측의 추가 도서 기증도 있었다. 이 자료실에는 중국의 역사·문화·기술과 관련한 서적들과 함께 시 주석의 사상 등을 설명한 책들도 소장돼 있다.

서울대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에는 중국의 역사와 기술 관련된 책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한 책이 비치되어 있다. 김홍범 기자

서울대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에는 중국의 역사와 기술 관련된 책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한 책이 비치되어 있다. 김홍범 기자

 자료실 명칭 논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때 다시 불붙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오세정 당시 서울대 총장을 향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발언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키는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데 서울대가 맞느냐. 베이징대학의 부속대학인가”라고 묻자, 오 총장은 “국가원수로서 기리는 게 아니라 시 주석이 자료를 많이 기증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반응했다. 규정상 문제는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후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료실 명칭의 적절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금도 서울대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등에선 “분명한 문제”라는 주장과 “실익 없는 외교적 마찰만 부를 것”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나온다.

지난 2014년 7월 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4년 7월 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실 구성에 참여한 한 교수는 “살아있는 정치인의 이름이 붙은 자료실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시 주석의 서울대 방문은 아시아 국가에서의 사실상 첫 정식 대중 연설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며 “한·중 관계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 보수 단체를 포함해서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중국에 대한 인식은 2016년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미국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이 지난해 4월 11일~6월 23일 한국 성인 1364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는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거나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같은 조사를 벌인 56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특히 20~30대에서 반중 정서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2015년 벌인 비슷한 설문조사에선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비율이 37%에 그쳤던 것과는 큰 차이다. 한국갤럽의 ‘한반도 주변국 정상에 대한 호감도’ 조사 추이에서도 시 주석의 방문 직후인 2014년 7월 둘째 주 시 주석에 호감을 가진 한국인이 조사대상의 59%에 달했다.

한 서울대 교수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지도 않는 자료실이 이제 와 참 골칫거리가 됐다. 행여 외교적 문제로 비화라도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자료실 명칭에서 시 주석의 이름을 빼 중국 자료실로 명칭을 변경하고, 일본 자료실을 함께 만들어 배치하는 등 실질적인 대안 논의가 필요하다”는 교수도 있었다.

지난 21일 해당 자료실을 방문한 한 중국인 유학생은 “개인적으론 중국 공산당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이 한국 사람의 생각보다 더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언론과 인터넷 환경이 자유롭지 않아 그런 중국인들의 인식이 한국에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중국과 중국인 일반에 대한 비호감도를 높이는 이름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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