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쟁은 싸우는 방법을 바꾸곤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지지부진한 참호전이 이어지자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은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깨뜨렸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곤욕을 치른 뒤 정밀타격 무기를 앞세워 걸프전에선 단숨에 이라크를 쳐부쉈다.
1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그러하다. 이 전쟁에서 새로운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전쟁의 영역은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넓어졌고, 드론을 비롯한 첨단무기가 날아다니고 있는데 땅에선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같은 시가전이 벌어지곤 한다. 적을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전투뿐만 아니라 적의 전쟁 수행의지를 노리는 인지전ㆍ심리전이 치열하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 찾고 이를 국방혁신에 반영한다면 핵ㆍ미사일로 위협하는 북한은 물론 날로 호전적으로 변하고 있는 주변국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신상태)와 대한국방외교협회(회장 권태환)는 지난 22일 서울 재향군인회 본부에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돌아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사점과 한국의 국방혁신’ 세미나를 열었다. 분야별 전문가 21명이 다양한 제언을 내놨다.
그 가운데 몇 개를 추려 이 자리서 소개해본다.
3축 체계에 과도한 예산 투입하지 말아야
전쟁 전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군사 혁신을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력건설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①우선 러시아는 목표 설정을 잘 못 했다. 러시아는 체첸 같은 지역에서 신속하게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동성 있고 효율적인 군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체첸보다 인구는 30배, 영토는 45배나 크다.
②러시아군의 현대화는 해ㆍ공군 위주며 육군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상전 중심이다.
③러시아군 무기체계는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냉전시대 방식으로 설계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장비ㆍ인원의 대규모 손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러시아ㆍ조지아 전쟁을 보고도 대비를 하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에게 크름반도를 뺏긴 뒤에서야 비대칭 전략에 기초를 두고 전력을 건설했다. 그리고 튀트키예 무인기 TB-2,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스팅어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넵튜 지대함 미사일 등을 갖췄고, 이들 무기는 이번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전력건설은 중요하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 국방개혁(기술집약형으로 개선한다)이나 국방혁신 4.0(첨단 과학기술군)에서 나온 목표는 일반론이자 당위론이다. 목표로선 부적절하다. 분명한 목표를 명시해야 한다.
목표 설정에 앞서 위협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한지, 일본을 잠재적 적국으로 봐야하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는 국가 대전략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범국가적이고 정파를 초월해 이뤄져야 한다.
기술 발전과 무기체계 사업추진 속도간 격차가 있다. 사업절차를 5~6개로 다양화해야 한다. 국방부는 전력건설 정책을 총괄하는 2차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합동참모본부 차장에게 별 4개를 줘 미래업무를 전담하게 한다. 소요결정의 일부를 각 군에 위임하고, 연구개발 예산의 일부를 각 군에 할당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주 수단은 미국의 확장억제며, 한국형 3축 체계는 보조수단이다. 핵은 핵으로 대응하는 게 기본이다. 3축 체계에 대한 예산 투입이 한국군의 전반적인 재래식 전쟁 수행능력을 약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3축 체계에선 대량응징보복(KMPR)→킬체인(Kill Chain)→미사일방어(KAMD) 순으로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북한이 어떤 능력에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것인지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변국 위협엔 극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 대함 탄도미사일, 대 위성 요격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등 비대칭 전력으로 맞서야 한다.
전쟁의 인명피해는 정치ㆍ군사적으로 감내하기 힘들다. 전차의 능동방어체계 등 무기체계의 방호능력 향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별 전투원의 임무수행 능력과 생존성을 높여야 한다. 소총 조준경, 야시장비, 무전기, 방탄복은 이제 기본장비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
2주간 피할 지하 대피시설 마련해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핵 사용 문턱이 낮아졌다. 러시아는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핵전략을 공세적으로 바꾸고 있다. 북한은 한국을 노리는 전술핵을 개발하고 있다. 북핵을 전방위로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호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을 자극하거나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면서 그동안 핵방위는커녕 기본적인 민방공조차 방치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2일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미사일을 쏘자,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린 뒤 총체적 난국을 보였다.
핵폭발 후 폭풍이나 열효과는 시설물 지하화로 일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방사능 낙진을 피해 최소 2주 동안 머물 수 있는 지하 대피시설이 필요하다. 식수와 음식, 의약품을 지하 대피시설에 미리 마련해야 한다. 핵폭발로 나오는 전자기펄스(EMP)가 전자장치의 내부 회로를 태운다. 최소 핵심 장비라도 방호할 수 있어야 한다.
핵민방위 교육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 국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박재완 국민대 정치대학원 안보전략 교수)
드론 만으론 전쟁 이길 수는 없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게임체인저로 부상했다. 소형ㆍ저속ㆍ저고도 비행 능력 때문에 탐지가 어렵고, 값이 싸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많은 양의 드론을 쓰고 있다.
튀르키예의 TB2는 전쟁 초반 이름을 떨쳤으나 러시아가 대대적으로 전자전ㆍ방공망 체계를 손본 뒤 맥을 못 추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가 “지금은 거의 쓸모가 없다”고 할 정도다. 양국 모두 대(對) 드론 능력을 개선하자 드론의 평균 수명은 1주일 남짓으로 짧아졌다.
드론 자체가 전쟁의 판세를 송두리째 좌우하진 않을 것이다. 드론의 이점을 상쇄하려는 기술혁신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군사적 약자이지만 나름 선전하는 이유론 탁월한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사용 능력), 스타링크, 자원봉사자 덕분으로 볼 수 있다. 드론은 강자의 일방적 우세를 더 강화하기보다는 약자의 상대적 열세를 보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드론 때문에 멀리서 공격할 수 있게 됐지만, 근접전투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바후무트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처럼 돼가고 있다.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북한에 맞서려면 예비군 정예화해야
러시아는 개전 초기 속전속결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쟁은 지리하게 이어졌다. 7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부분동원령을 내렸다.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장비도 부실하게 주고선 바로 전선에 투입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예비군을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늘려 러시아를 막아냈다. 핵심전력을 상비전력이 아닌 예비병력 중심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예비군의 무장과 훈련이 부실해 고전한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로 눈을 돌려보면 북한은 예비전력에서 한국을 압도한다. 북한의 예비전력은 762만명이며, 한국은 310만명이다. 북한의 예비전력은 연간 30~60일 훈련을 받지만, 한국은 연간 3~4일이다.
한국이 예비전력을 정예화하려면 예비군도 상비군과 동일한 수준으로 무장해야 한다. 지역 예비군은 예비군 100% 편성부대로 운용하며, 예비군 사이버 부대도 창설해야 한다. 훈련기간을 늘리고, 실전적 훈련을 받을 여건을 마련하며, 훈련ㆍ소집 보상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장태동 국방대 예비전력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