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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확 1등 벼' 씨를 말린다?…신동진 매입 제한에 농촌 발칵

중앙일보

입력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가 지난 2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맛과 품질로 소비자에게 인정받은 '신동진' 벼를 매입 제한 품종으로 지정한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며 "농민들과 재논의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가 지난 2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맛과 품질로 소비자에게 인정받은 '신동진' 벼를 매입 제한 품종으로 지정한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며 "농민들과 재논의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식품부 "신동진 공공비축미 매입 제외"  

정부가 "쌀 생산량을 줄이겠다"며 '다수확 1등 품종'인 신동진 벼를 사들이지 않기로 하자 농촌이 발칵 뒤집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6일 "내년부터 공공비축미 매입 제한 품종에 신동진·새일미를 추가하는 공문을 지난달 전국 17개 시·도에 보냈다"며 "2025년부터는 정부 보급종(종자) 공급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간 2000t에 달하는 신동진 종자 공급까지 끊어 "씨를 완전히 말리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쌀값 안정과 품종 다양화 등을 내세웠다. 수확량이 퇴출 기준이다. 현재 정부는 10a(300평)당 생산 단수(단위 면적당 수확량) 570㎏ 이하로만 공공비축미를 받고 있다. 신동진 생산 단수는 596㎏, 전남에서 많이 재배하는 새일미는 585㎏이다. 국내에서 신동진과 새일미만 다수확 품종으로 남아 있다고 농식품부는 전했다.

'쌀의 날'인 지난해 8월 18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가득 쌓인 벼 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쌀값이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자 정부는 "수확기(10~12월) 45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쌀의 날'인 지난해 8월 18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가득 쌓인 벼 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쌀값이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자 정부는 "수확기(10~12월) 45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농가 "수확량 많아 퇴출? 납득할 수 없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연초에 공공비축미 매입 품종을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립종자원에서 종자를 보급한다. 농식품부 측은 "전북 일부 지역이 정부 방침에 반대해 공공비축미 매입 품종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전체 14개 시·군 중 김제·군산·익산·정읍·전주가 '신동진을 제외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했다.

신동진은 1999년 농촌진흥청이 390억원가량 들여 개발한 쌀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쌀 재배 면적 1위(13%)다. 쌀알이 굵고 밥맛이 좋아 '소비자가 뽑은 12대 브랜드 쌀'로 가장 많이 선정됐다.

이에 전북 농민은 "갑자기 주력 품종을 바꾸라는 건 잘못"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맛과 품질이 우수한데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로 매입을 제한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 전북에선 신동진이 독보적이다. 현재 쌀 재배 면적(11만3775㏊)의 53%가 신동진이다. 공공비축미 수매 물량은 74%에 달한다.

전북 김제시의회 의원들과 김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원 등이 지난 22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수한 품질과 맛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신동진 벼를 매입 제한 품종으로 지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김제시의회 의원들과 김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원 등이 지난 22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수한 품질과 맛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신동진 벼를 매입 제한 품종으로 지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민단체 "20년 쌓은 브랜드 가치 뒤엎어" 

전북 지역 15개 농민단체가 연합한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전북농단연)는 지난 2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벼 보급종 수매 계획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농민과 재논의해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전북농단연은 "신동진 가치는 지난 20여년간 농민과 RPC(미곡종합처리장) 등 노력으로 입증됐다"며 "신동진 퇴출은 그간 쌓인 상표 가치와 (농민들이 쏟아부은) 시간·노력·자본을 모두 뒤엎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대체 품종으로 공급할) 참동진이 신동진보다 이삭도열병에 강하다고 하지만, 다른 병해충에 약한 단점도 있다"며 "검증 기간이 필요한 만큼 최소 5년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김제시의회·군산시의회는 잇따라 '신동진 벼 품종 매입 제한 및 보급종 중단 철회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전국농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전국농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정부 "쌀 공급 과잉…대체 품종으로 바꿔야"

전북도는 중재에 나섰다. 도 농산유통과 관계자는 "신동진은 여전히 소비자 인지도가 좋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 일반 벼보다 40㎏당 4000원가량 더 받는다"며 "과거 운광·새누리도 매입 제한 계획부터 실행까지 수년간 유예해 준 사례를 고려해 신동진도 2~3년 보류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했다.

정부는 난감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쌀값이 폭락한 건 공급 과잉 때문"이라며 "신동진은 병충해에도 약해 대체 품종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관계자는 "정부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쌀 적정 생산 대책으로 신동진 매입 제한 방안을 마련해 지자체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했다. 그는 "다만 농가는 수입과 직결되다 보니 매입 제한 시점을 합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북 외 다른 지역 농민은 반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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