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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끊이지 않는 시비…강남 '재건축 신' 이번엔 무자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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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재건축 사업 현장. 김영주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재건축 사업 현장. 김영주 기자

서울 강남 최고의 ‘관심단지’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원들은 지난 2년간 “조합원 한형기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수도 없이 받았다. 한씨는 래미안원베일리 바로 옆에 있는 아크로리버파크(옛 신반포1차)의 재건축조합장을 하면서 ‘재건축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유명인사다. 래미안원베일리의 실질적인 조합장이 한씨라는 말도 정비업계에서는 파다했다

그런데 지난 23일 한씨가 래미안원베일리 조합원들에게 보낸 문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씨 자신이 2년 전 조합원 분양계약 당시 계약을 포기하고, 현금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상(현금청산)받고자 했다고 밝힌 것이다. 대법원 판례와 조합 정관 등에 따르면 계약체결을 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 지위가 상실된다.

한씨는 “여러 이유로 2년 전에 현금청산을 원했지만, 조합에서 현금청산을 거부하며 붙잡고 있었다”며 “이번 출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난 1월 26일에 분양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현재 래미안원베일리는 부조합장 선거를 진행 중이고 한씨는 여기에 출마했다. 현재 래미안원베일리 조합장은 직무정지 상태로 부조합장 당선자는 사실상 조합장 역할을 맡게 된다.

조합 정관(제44조 4항)에 따르면 조합원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 조합이 정한 기간 이내에 분양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 분양계약 체결 기간 내에 체결하지 않은 경우는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에 준해 처리하는 것으로 규정(제44조 5항)했다.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현금청산’ 대상이다.

유사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2010년 대법원은 분양신청 기간 내에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조합원은 기간 종료일 다음 날 조합원 지위는 자동 상실되고 곧바로 현금청산관계가 발생한다고 판시(대법원 2010 선고 2009다81203)했다. 또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도 정관에 따라 분양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에 준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영창 래미안원베일리 조합장 직무대행은 “한씨가 분양계약 체결을 안 한 것이지 분양신청은 했기 때문에 (언제 계약하든)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며 “(한씨 외에도) 이런 식으로 계약한 사람들이 57명이나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계약을 안 하면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다는 내용이 법에는 없고 조합 정관에만 있다”며 “조합이 (내가) 조합원이 아니면 재건축사업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현금청산을 안 해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재건축 전문 변호사들은 “분양신청과 분양계약은 연장선”이라며 “정관에 따라 정해진 기한 내에 계약하지 않은 경우 법적으로 조합원 지위가 상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주원의 임현철 변호사는 “아무 때나 계약이 가능하다면 조합원은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유불리를 따져 언제든지 계약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고 했다.

정비사업 컨설팅업체 저스티스파트너스의 김상윤 대표는 “조합의 설명대로라면 조합이 특정 조합원에 대해서만 고무줄 계약을 했다는 것으로 57명이나 그렇게 했다면 그 조합은 ‘업무상 배임’을 자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 겸직’ 금지…사퇴 시점 의혹

한씨를 둘러싼 시비는 이것 뿐만 아니다. 한씨는 래미안원베일리 부조합장 선거 입후보자 마감날인 지난달 31일까지 옆 단지인 신반포1차(아크로리버파크) 재건축조합의 대표청산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제42조 조합임원의 직무 등)에 따르면 한 조합의 임원은 다른 조합의 임원(조합장·감사 등)을 겸할 수 없다. 서울시 결정 고시(2017 고시 제4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르면 청산인도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한씨는 선거 입후보 마감날에 대표청산인 직을 사퇴했다고 나중에 밝혔다. 래미안원베일리 선관위도 “서류를 검토한 결과 후보 자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서초구청에도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2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2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2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하지만 1월 31일 이후에도 한씨가 대표청산인으로 일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 홈페이지에 ‘청산인회 회의록’을 통해서다. 회의록은 ‘2월 2일 오전 10시’에 대표청산인 한씨가 업무를 처리했다는 내용으로 한씨의 서명도 있다. 사실이라면 한씨가 사퇴했다는 1월 31일 이후에도 대표청산인으로 계속 업무를 했다는 것이 된다. 정보몽땅은 서울시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공시 모음집이다.

지난 4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4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4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지난 4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올라온 신반포1차 '청산인회 회의록'. 신반포1차 조합원 제공

그러나 이틀 후인 4일, 같은 내용의 ‘청산인회 회의록’이 다시 올라왔다. 다만 회의날짜가 ‘1월 31일 오전 10시’로 바뀌어 있었다. 현재 홈페이지에도 이렇게 공시돼 있다.

앞서 지난 2일 회의록을 내려받았다는 아크로리버파크 한 조합원은 “한씨가 부조합장 선거에서 ‘조합 임원 겸직’ 사항이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자 같은 내용을 날짜만 바꿔 다시 올린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씨는 “(날짜를 바꿔 다시 올린 건) 여직원의 단순한 실수”라며 “(래미안원베일리·아크로리버파크) 일부 조합원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그들의 주장은) 그동안 사실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 출신(1959년생)인 한씨는 경기공업전문학교 기계설계과를 졸업하고 (주)대우,삼성중공업 등에서 일했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규칙에 등록된 한씨의 경력증명서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에어컨 등을 설치하는 공조냉동 및 설비업무를 맡았다.

그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3차 현장소장 역임이라는 경력을 내세워 재건축 대상 단지 주민들에게 자신이 건설전문가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경력증명서엔 타워팰리스3차 공사 당시 그는 삼성중공업 부장이었고, 맡은 분야는 공조냉동 및 설비다. 그의 건축부문 공식 등급은 ‘건축 분야 초급 기술인’이다. ‘초급’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전공자도 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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