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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육식·초식공룡알이 한 곳에 있다니"…세계 첫 발견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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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공룡알 옆에서 알 낳은 간 큰 초식공룡 정체는?  

지난 19일 오전 11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변. ‘공룡박사’ 허민(62·한국공룡연구센터장) 전남대 교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멈춰 섰다. 13년 전 육식공룡알이 발견된 언덕 옆에서 또다른 형태의 공룡알들로 보이는 조각이 눈에 띄어서다.

황급히 주저앉아 알 조각을 살펴보던 그는 탄성을 질렀다. 과거 발견된 육식공룡의 알둥지 옆에 있던 화석이 거대한 초식공룡 알이어서다. 허 교수는 “긴 곤봉형인 육식공룡알과 달리 초식은 원형이나 럭비공에 가까워 육안으로 구별된다”며 “통상 포식자인 육식공룡을 피해 알을 낳는 초식공룡 행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압해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곳서 육식+초식공룡알, 세계 첫 발견

백악기 시대 대표적인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와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는 2009년 대형 육식공룡이 발견된 곳에서 대형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됐다.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백악기 시대 대표적인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와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는 2009년 대형 육식공룡이 발견된 곳에서 대형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됐다.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발견된 공룡알 조각은 곧바로 전남대에 있는 한국공룡연구센터로 옮겼다. 압해도 해변에 있던 화석이 초식공룡 알인지를 명확히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공동발굴에는 목포자연사박물관 연구팀도 참여했다. 앞서 두 연구팀은 2009년 압해도에서 대형 육식공룡 알둥지를 발굴해 공동복원했다.

두 연구팀은 공룡알 형태분석과 전자·편광현미경 작업을 통해 대형 초식공룡알임을 확인했다. 커다란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이 같은 장소에 알을 낳은 게 최초로 확인된 순간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거대 육식·초식공룡알, 120m 거리서 발견

허민 한국공룡연구센터장(전남대 교수)이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을 추가로 발견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13년 전 발견된 육식공룡알과의 연관성 및 추가 연구에 대한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허민 한국공룡연구센터장(전남대 교수)이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을 추가로 발견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13년 전 발견된 육식공룡알과의 연관성 및 추가 연구에 대한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추가로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알들. 프리랜서 장정필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추가로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알들. 프리랜서 장정필

연구팀은 이번에 발견된 공룡알 크기가 직경 15㎝ 정도인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온전한 크기가 복원되면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큰 초식공룡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13년 전 발견된 육식공룡알(30~40㎝)은 티라노사우루스만한 대형 공룡의 것으로 분석됐다.

허 교수는 앞서 발견된 육식공룡 알둥지와 초식공룡알의 거리가 약 120m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 알의 위치만 봤을 때 거대한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이 한 곳에서 살았음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티라노사우루스만한 육식공룡과 브라키오사우루스만한 초식공룡이 같은 곳에서 공존했다는 가설이 성립하는 셈이다.

공룡알·뼈 발견…‘공룡 자연사박물관’ 압해도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대형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 프리랜서 장정필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대형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 프리랜서 장정필

현장 추가발굴과 분석 결과도 연구팀을 놀라게 했다. 대형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알에 이어 보존 상태가 양호한 공룡뼈 화석까지 잇따라 발견됐다. 연구팀은 발견된 뼈가 속이 비어있고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다는 점에서 소형 육식공룡 또는 익룡 뼈로 보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초식공룡알 중에 매우 얇은 알 화석이 포함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두께 0.5㎜ 수준인 공룡알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사례여서다. 현재로선 백악기 시대 조류 알이나 매우 작은 소형공룡 알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허 교수는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대형 초식공룡알, 소형 얇은 알, 잘 보존된 뼈 화석이 두루 발견된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며 “세계적인 화석 산지인 몽골 고비사막처럼 알 화석 연구의 대표적인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종의 다양성…백악기 ‘공룡의 천국’ 뒷받침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추가로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알들. 프리랜서 장정필

2009년 대형 육식공룡알에 이어 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추가로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알들. 프리랜서 장정필

일반적인 초식공룡알의 단층 촬영 모습.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일반적인 초식공룡알의 단층 촬영 모습.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압해도 공룡알·공룡뼈 발굴이 백악기 때 한반도의 기후·환경을 보여주는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다양한 공룡시대 화석자체가 공룡들과 생명체들의 서식지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이는 8000만년 전 목포 앞바다 일대가 공룡들의 생존과 번식에 최적지였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열쇠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72년 경남 하동군 수문리 해안에서 공룡알 화석이 최초로 발견됐다. 이후 15개 이상 지역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됐지만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의 알, 공룡뼈 화석 등이 한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허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알은 풍화나 마모 정도가 높지 않은 점으로 미뤄 백악기 시대 대규모 공룡알 둥지가 묻혀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백악기 당시 공룡 산란지 환경이나 고환경·고생태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임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했다.

2009년 발견된 압해도 육식공룡알 둥지

2009년 대형 육식공룡이 발견된 곳에서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된 전남 신안군 압해도 위치도.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2009년 대형 육식공룡이 발견된 곳에서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이 추가로 발견된 전남 신안군 압해도 위치도. 사진 한국공룡연구센터

목포 앞바다인 압해도가 공룡연구지로 부각된 시기는 2009년 11월로 올라간다. 한국공룡연구센터 측이 이 일대 지질환경을 조사하던 중 공룡알 둥지 화석을 발견했다. 당시 목포자연사박물관과 공동으로 진행된 조사에서는 크기가 1.5m에 달하는 둥지 3개와 30여 개의 공룡알, 파편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국내 최대 육식공룡 알둥지 화석은 2011년 5월 일반에 공개됐다. 1년 6개월에 걸친 복원을 거쳐 지름 230㎝, 무게 3t의 둥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둥지 화석은 크기 41~43㎝에 이르는 국내 최대 육식공룡알 19개가 포함된 상태였다. 당시 복원된 육식공룡알 둥지는 한반도 육식공룡 실체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허민 “몽골처럼 세계적 공룡 화석지될 것”

2009년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서 발견된 대형 육식공룡의 알둥지. 천연기념물 제 535호로 지정돼 있으며, 목포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 목포자연사박물관

2009년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서 발견된 대형 육식공룡의 알둥지. 천연기념물 제 535호로 지정돼 있으며, 목포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 목포자연사박물관

김보성 목포자연사박물관 연구팀장이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을 추가로 발견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13년 전 발견된 육식공룡알과의 연관성 및 추가 연구에 대한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보성 목포자연사박물관 연구팀장이 지난 19일 초식공룡알을 추가로 발견한 전남 신안군 압해도 해안에서 13년 전 발견된 육식공룡알과의 연관성 및 추가 연구에 대한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앞서 육식공룡알을 발견한 한국공룡연구센터와 목포자연사박물관 측은 압해도 인근에 대한 추가 연구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본다. 공룡시대 종의 다양성과 육식·초식공룡 간 산란지 생태, 공룡뼈 화석과 공룡알과 연관성 등을 규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어서다.

김보성(51) 목포자연사박물관 연구팀장은 “압해도 일대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백악기 후기의 생태 환경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에 발견된 육식공룡의 알둥지와 초식공룡알과의 관계 규명 또한 가치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허민 교수

‘코리아노사우루스’, ‘해남이크누스’ 등 한국 학명의 공룡을 세계 학계에 알린 학자. 전남 해남·보성·여수·화순, 경남 고성 등 국내 주요 공룡화석지 발굴을 주도해 ‘공룡박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전남대에서 강의를 하며 한국공룡연구센터장과 한국고생물학회장, 대한지질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점박이’, EBS ‘한반도의 공룡, 코리아나사우루스’ 등을 총괄 자문했으며 세계 100대 과학자(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에 선정됐다. 국내외 60여 편의 논문을 비롯해 『공룡의 나라 한반도』, 『잃어버린 30억 년을 찾아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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