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나토 vs 러·중 진영 간 글로벌 각축전 더 치열해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8호 03면

우크라 전쟁 1년, 국제정세 격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4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맞은 국제사회가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국면과 마주하고 있다. 유엔은 23일(이하 현지시간) 긴급 특별총회를 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평화와 원칙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찬성 141표, 반대 7표, 기권 32표로 가결돼 국제적으로 고립된 러시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러시아를 비롯해 벨라루스·북한·시리아·니카라과·에리트레아·말리만 반대했고, 한국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중심이 돼 추진한 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가해 찬성표를 던졌다.

앞서 지난 20일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개전 이래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푸틴은 틀렸다”며 5억 달러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도 약속했다. 이튿날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이웃 폴란드에서 20분간 연설하는 동안 “푸틴은 실수한 것”이라며 푸틴을 10차례나 언급했다. 한 나라가 침략을 받으면 집단 대응하는 나토 헌장 5조도 거듭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이에 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모스크바에서 100여 분간 국정 연설을 하며 미·러 간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전쟁을 시작한 건 서방”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2일엔 조국 수호자의 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증강을 언급하기도 했다. 3대 핵전력은 전략폭격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일컫는다.

현재 러시아는 병력과 무기를 증강해 새로운 공세를 예고하고 있으며, 독일제 레오파르트2 전차 등 서방 무기를 추가 지원받게 된 우크라이나도 고삐를 더욱 단단히 죄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 22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협력을 다짐했다. 이처럼 전쟁 1년을 맞아 미·중·러 최고위급 인사들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사흘 연속 이어진 데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리전’ 양상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년째에 접어든 이번 전쟁은 국제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에너지·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또한 요동치고 있다. 국제관계는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국제 규범이나 가치 대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중립 기조를 유지하는 ‘형세 관망국’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주목을 모은다.

이와 관련, 영국 싱크탱크인 채트넘하우스는 지난 21일 발표한 ‘전쟁 1년’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일본·싱가포르 등 소수에 불과하고 인도·파키스탄·이란·인도네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옳고 그름이나 자유·인권·민주주의 같은 이념 대신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로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수출하고 대신 자국 히잡 시위 무력화에 필요한 감시 장비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선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값싼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지속하는 등 경제적 이익도 놓치지 않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안보문제연구소(SWP)는 “인도의 경우 지난해 여름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개한 만큼 향후 대응 전략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프리카·중남미·중동 등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들)’의 전략적 냉담과 사태 관망도 주목된다.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중국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유엔총회는 지난해 3월 2·24일과 4월 9일, 10월 12일 등 네 차례에 걸쳐 대러시아 결의를 채택했다. 이에 대해 이들 글로벌 사우스 지역을 중심으로 45~48개국이 기권 또는 결석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대러시아 인권 결의안에는 반대 24개국, 기권 58개국, 결석 18개국 등 193개 회원국 중 100개국이 부정적·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인권과 민주주의 등을 앞세운 서방에 적잖은 제3세계 국가들이 거부감을 보인 셈이다.

독일 국제방송 DW는 “아프리카 국가 중 절반 이상이 표결에서 빠졌다”며 “이들 국가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을 되돌아보며 ‘결국 세계대전도, 냉전도, 이번 전쟁도 유럽이 일으킨 게 아니냐’며 싸늘하게 거리두기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관망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려는 국가들이 크게 늘면서 이들 국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 간의 각축전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가 핵 카드를 들고나온 것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핵무기의 전략적 가치를 감안할 때 서방도 이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점에서다.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청에도 장사거리 무기나 전투기 지원을 제한하는 등 ‘자기 검열’을 해온 거나 지난달에야 전차 지원을 결정한 것도 핵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국경 너머 러시아 지역을 공격하는 걸 극구 말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러시아도 핵무기를 위협용 외에는 달리 쓸 수 없을 것이란 현실론을 들어 핵 변수가 우려하는 만큼 크게 부각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반면 한때 ‘냉전의 유물’로 치부되던 서방의 집단 안보기구인 나토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게 됐다는 평가다. 옛 소련 시절부터 전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쳐 왔던 거대 국가 러시아의 위상이 흔들리고 서방 세력을 이끌어온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영향력 또한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유럽과 나토의 입지가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포비아(러시아 공포증)’의 확산도 서방국가들이 나토를 중심으로 뭉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 기조를 유지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한 게 상징적이다.

나토는 한발 더 나아가 유럽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까지 아우르려는 의도도 내비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최근 한국과 일본을 잇따라 찾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해 한국도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보다 주도적이고 전략적인 외교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