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미한 부상인데 상급병실 입원, 10여가지 한방 진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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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14면

자동차보험 과잉진료 논란

“교통사고 나면 무조건 한방병원 가야지, 그래야 합의도 잘된대.”

얼마전 이경민(35)씨는 아파트 단지내에서 접촉사고를 냈다. 단지에서 서행 중 킥보드를 타던 아이를 피하려다 갓길에 정차돼 있는 상대방 차량의 옆면을 스치듯 긁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상대방이 ‘괜찮다. 이정도 접촉사고는 흔하다’고 말했는데 얼마 뒤 보험사를 통해서 상대방이 서울의 유명한 한방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하루 입원비만 20만~30만원 한다더라”고 말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경미한 교통사고 후에도 초호화 치료를 받는 등 과잉진료가 일상이 되고 있다. 정모(50, 경기도 수원시)씨는 2022년 11월 경미한 접촉사고로 상해급수 12급의 척추염좌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사고가 난 후부터 매일 침술, 부항, 약침, 뜸 등 10여가지의 진료를 받았다. 보험사의 관계자는 “환자의 증상과 피해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한다기 보다는 방문만 하면 동일한 시술을 무더기로 시행한다”며 “단순 요양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내 한방 진료 비율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의원의 상급병상은 2019년 861개에서 2020년 1898개로 1년 만에 120.4% 증가했다. 2021년 11월 의료정책연구소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의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자동차보험 청구기관 비율은 의원 17.62%, 요양병원 44.94%, 병원 71.09%인 것에 비해, 한방병원과 한의원은 각각 96.83%와 82.54%다.

자동차보험 한방진료 실적은 201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자보심사를 위탁받아 심사 실적 자료가 축적되기 시작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2014년 1조4234억 원이던 자동차보험 진료비는 2020년 2조3370억원으로 64.2% 늘었다. 특히 한방 진료비 증가가 눈에 띈다. 의과의 경우 같은 기간 1조1503억원에서 1조1676억원으로 큰 변화가 없는 반면, 한방은 2698억원에서 1조1643억원으로 331.5% 증가했다. 한방병원은 787억 원에서 5505억원으로 599.5%, 한의원은 1911억원에서 6137억원으로 221.4% 늘었다. 그 결과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 중 의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80.8%에서 2020년 50%로 감소한 반면, 한방은 같은 기간 19%에서 49.8%로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 한방병원에 문의한 결과 교통사고에 대한 실질적인 치료보다 고급스러운 시설과 한약 처방 등에 대한 홍보가 주를 이룬다. 서울 모 한방병원 관계자는 “시설이 호텔만큼 깔끔하다”, “고급스러운 1인실을 이용하며 추나요법, 한약 처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 한방병원에 입원했던 이진영(42)씨는 “1인실에 고급 안마의자와 대형 TV를 구비하고 넷플릭스, 티빙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굉장히 고급스럽고 대접받는 기분이라 좋았지만 조금은 과도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반 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서비스지만 한의과에서는 가능하다. 국토교통부가 정하는 자동차보험수가기준상 7일까지 환자가 아무런 부담 없이 상급병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규정상 병실이 10개 이하인 한의원은 일반병실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의원에서 1~2인실의 상급 병실만 두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새는 보험금은 자동차보험의 가격 상승을 불러 온다. 특히 자동차보험 한방진료 건수가 늘고, 이로 인한 진료비 급증이 및 보험료 인상이 우려된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교통사고 나면 바로 한방병원으로 가야 보험사 직원이 달려온다더라’, ‘한방병원에 입원하니 합의금이 30만원 올랐다더라’는 등 다양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L&L)는 “보험 제도가 허술하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라며 “보험사가 경미한 사고 같은 경우 악성 민원인이 진정을 넣는 것을 더 무서워하기 때문에 과잉 치료를 못본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사고를 내지 않거나 경미한 사고를 낸 선의의 운전자들은 분통을 터트릴 수 밖에 없다. 자동차보험 가입자 이정우(37)씨는 “살면서 사고가 나도 한방병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며 “정말 아픈 사람들이 몇몇 악용하는 사람이나 병원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보험료와 한방 진료 비율 증가가 한방병원의 잘못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대한한의사협회의 21년 ‘교통사고 후 한의치료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 후 제공 받은 한의의료기관 의료서비스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 17.1%, ‘만족하는 편이다’ 74.4%로 90%가 넘는 만족감을 표시할 정도로 피해자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한의 진료 후 증상 개선 정도에 대해서는 ‘우수’ 15.0%, ‘호전’ 50.7%, ‘약간 호전’ 29.2%로 총 94.9%의 응답자가 치료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만족한 한의치료 서비스는 침·뜸·부항-한방물리요법-약침-추나요법-첩약-기타 순이었다.

해당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7월 상급병실 입원은 치료 목적이어야만 하고 '병실 사정'이라는 예외적 상황은 병원급 이상으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기준 일부개정안을 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진료수가 및 세부 인정기준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은 한방 진료 특징상 과잉 진료, 보험사기 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찬 의료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현행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에는 첩약, 약침술, 추나요법, 한방물리요법 등에 있어 횟수 제한이나 인정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한방 경증환자에 대한 진단서 교부를 의무화하고 치료기간별 지급 금액 규모나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건강보험에서 한방특약을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자동차 보험에서도 한방의료기관의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보험료를 깎아 주는 등 소비자에게 어드벤티지를 주는 대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보험 제도의 변화는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경일 변호사는 “제도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소수를 잡기 위해 섣불리 제도를 개선하면 정말 한방 진료나 입원이 필요한 분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며 “의도적 과잉진료나 보험 사기 등을 적극적으로 적발해 일벌백계하는 대안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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