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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 산불감시원이 술잔 멀리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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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13면

SPECIAL REPORT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산불감시탑에서 신갑철 산불감시원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산불감시탑에서 신갑철 산불감시원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깃발이 펄럭였다.

지난 2월 1일 제주시 추자면, 그러니까 추자도. 그 중 하추자의 뼈대인 돈대산(164m) 서쪽 능선에 전날까지는 못 보던 ‘산불 조심’ 깃발이 추자의 센 바람에 나부꼈다. 비어있던 산불감시초소에는 파수꾼이 생겼다. 산불감시원 10년 베테랑, 조현씨다.

이날은 올해 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2월 1일~5월 15일) 첫날이었다. 산불감시원은 통상 산불조심 강조 기간을 앞두고 산림청과 지자체에서 약 1만여 명을 뽑는다. 지난해 산불이 급증하고 대형산불이 11건이나 발생하면서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이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 예방과 초동 진화 그리고 뒷감당의 최전선, 산불감시원 3명을 만났다. 그들의 하루는 어떨까.

“58년 개띠. 올해부터 만 65세 노인이지요.”

오전 9시. 돈대산에 ‘출근’한 조씨가 웃으며 말했다. 매년 11월 1일~12월 15일(가을철), 2월 1일~5월 15일(봄철)은 산불조심 강조기간이다. 10월과 1월은 산림청과 각 지자체의 산불감시원 채용 시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나이 제한을 없애 70대도 응시해 체력 검정을 치른다. 15㎏ 등짐펌프를 메고 2㎞를 걷는다. 30분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면접의 기회도 없이 무조건 탈락이다. 하지만 조씨는 “체력 검정은 안 치렀다”며 “왜 얼마 전에 시험 보다가 사망 사건이 연달아 나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돈대산에서 산불감시원 조현(65)씨가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돈대산에서 산불감시원 조현(65)씨가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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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울산과 경남 창원, 경북 군위에서 산불감시원 응시자 세 명이 1주일 새 체력 검정을 본 뒤 심정지로 사망했다. 각각 60세, 71세, 59세였다. 당시 군위군 본청 산불감시원은 30명을 뽑았는데, 60명이 응시했다. 2대 1의 경쟁률이었다. 농한기, 건설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마련해 보려는 이들이었다.

군·읍 본청 소속 산불감시원은 경쟁률이 비교적 높지만, 면 단위로 내려가면 경쟁률은 확연히 떨어진다. 강원도 영월군의 경우 지난 1월 산불감시원 채용 때 영월읍은 경쟁률이 1.5대 1 정도였는데, 다른 곳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

 지난 2021년 1월 15일 오전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열린 산불예방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응시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검정을 받고 있다. 1월 중하순은 2월~5월 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을 앞두고 산림청과 각 지자체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산불감시원)를 집중적으로 뽑는 시기다. [연합뉴스]

지난 2021년 1월 15일 오전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열린 산불예방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응시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검정을 받고 있다. 1월 중하순은 2월~5월 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을 앞두고 산림청과 각 지자체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산불감시원)를 집중적으로 뽑는 시기다. [연합뉴스]

조씨가 있는 한 평 산불감시초소 안에는 불갈퀴·삽 등 산불 초기 진화를 위한 장비가 있었다. 작은 탁자 위에는 무전기·망원경·일지 그리고 정오를 기다리는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정오. 오후 1시까지는 법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도시락을 먹는 와중에도 사방을 살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산불감시원의 정식 명칭은 산불전문예방진화대. 산림청이 두 분야를 합치면서 이름도 하나로 통일했다. 지난해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산불예방전문진화대는 총 1만110명. 평균 연령 61세다. 조씨 같은 65세 이상 ‘노인’도 33.7%에 이른다. 급여는 최저 시급 9620원을 적용한다.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 일하고 7만6960원을 번다. 최저 임금의 기간제 근무는 젊은 인력이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2월 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산불대응센터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들이 산불진화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산불대응센터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들이 산불진화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오후 2시. “여기 이름 적으세요.”

지난해 11월 4일, 가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에 돌입한 지 나흘째에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의 한 야산 입구. 기자가 사찰 취재 일정으로 주변을 배회하자 산불감시원 이해운(62)씨가 다가왔다. “어디 가시느냐”며 “산에 가려면 인적사항을 남기라”고 했다. 이씨는 이날 다섯 명의 입산자 명단을 적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가끔 이름을 적는 것에 반감을 갖는 산행객들이 있다”고 밝혔다.

오후 4시. “저기 북한산까지 봅니다.”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망월산(179m)에서 신갑철(73)씨가 망원경으로 동서남북을 차례로 살폈다. 그는 퇴직 뒤 덕양구에서 10년째 산불감시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동네 지리에 밝은 사람이 감시원이 돼야 초동 진화가 원활하다”며 “바싹 마른 산은 여차하면 불이 터질 화약고 수준이라, 2월에만 훈련을 벌써 두 번이나 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7일 덕양구 행신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신속한 초동 진화로 15분 만에 주불(주된 불)이 잡혔다.

산불감시원은 어떤 이에게는 절실한 자리지만, 어떤 이에게는 앉아서 돈 버는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일자리 청탁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신씨는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제대로 일을 안 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감시원이 입산통제구역에서 등산객의 인적사항을 적고 있다.. [사진 산림청]

산불감시원이 입산통제구역에서 등산객의 인적사항을 적고 있다.. [사진 산림청]

오후 6시. “퇴근하지만 막걸리 한 잔은 못하겠네요.”

신씨는 “근무지와 출퇴근 동선이 일정해야 한다”며 “특히 야간 산불은 헬기 출동이 어렵기 때문에 산불전문예방진화대(산불감시원)의 초동 진화가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산불강조 기간은 내게 금주, 절주 기간이기도 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산불감시원은 주 5일 근무가 원칙이다. 연장근무와 휴일근무가 있을 수 있다.

다시 추자도. 조현씨도 돈대산을 내려간다. 그는 “산불감시원은 고독한 직업”이라며 “오늘 같은 평일은 사람 한 명 못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도 초소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차가운 도시락을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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