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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타다’에서 멈춘 한국, 저만치 앞서 가는 일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8호 30면

플랫폼과 이익단체 갈등 재연한 ‘로톡’ 사태

공정위의 늦은 제재 탓 업체는 존폐 기로

일본선 이미 상장 이어 혁신 서비스 내놓아

공정거래위원회가 1년 넘게 끌어온 변호사 이익단체의 부당 행위에 대한 제재를 확정 지었다. 공정위는 지난 23일 변호사들의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의 이용을 금지한 대한변호사협회(변협)·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0억원(각 10억원씩)을 부과하기로 했다. 로톡 서비스는 소비자의 법률시장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 변호사 이익단체는 소속 변호사의 이용을 막아왔다.

이로써 로톡 서비스가 세상에 나온 2014년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혁신 플랫폼과 이익단체 간 갈등이 표면적으론 일단락됐다. 플랫폼 산업 규제 완화라는 큰 방향성 아래 윤석열 정부가 로톡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다. 하지만 변협이 공정위의 제재 결정에 대해 “결론 끼워 맞추기 식 억지 제재”라며 불복 소송을 예고해 양측의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공정위의 이번 제재 결정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비단 로톡뿐만 아니라 의료·세무·부동산 등 기득권 이익집단의 반발에 막혀 고전해온 국내 여러 혁신 서비스 플랫폼 스타트업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변협이 변호사를 상대로 부당 행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성형 가격정보 공개 등을 둘러싸고 의협과 갈등을 빚고 있는 성형정보 플랫폼 ‘강남언니’ 등 다른 플랫폼 문제도 소비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될 것이란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공정위가 변협의 부당행위와 관련해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낸 게 벌써 지난 2021년 11월이다. 신속하게 제재 여부와 처벌 수위를 결정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1년 넘게 결정을 미루면서 사업자인 로톡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4000명에 달했던 변호사 회원 수는 변협과의 법적 공방 와중에 반 토막이 났고, 누적 적자가 100억원을 넘어서며 결국 직원 절반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에 몰렸다. 정부가 이해당사자 간 조정에 손을 놓은 탓에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다 2019년 결국 서비스를 접었던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스타트업계 내에서 제기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는 로톡 광고를 금지한 변협의 새로운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변협이 로톡을 상대로 제기한 세 차례의 고발은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변협이 법적으로 완패를 거듭한 셈이다. 그런데도 변협이 전향적 태도로 대화에 나서기보다 강경 일변도로 대응해온 데는 ‘타다’ 사태 당시 정부와 정치권이 소비자 편익을 무시하고 택시업계 손을 들어준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타다’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리걸 테크 선두주자인 미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로톡과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인 일본의 벤고시닷컴은 일본 전체 변호사 절반 이상을 회원으로 확보하며 시장에 안착했고, 이를 토대로 이미 오래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다. 이렇게 쌓아온 변호사와 고객 간의 고급 상담 데이터를 토대로, 요즘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이르면 다음 달 내놓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비단 챗GPT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기득권 눈치 보느라 혁신에 눈을 감는다면 미래는 없다. ‘타다’의 실패를 재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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