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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프리다 칼로, 갈매기눈썹과 민속의상을 고집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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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22면

[영감의 원천] 프리다 칼로와 패션

영화 ‘프리다’(2002)의 한 장면. [사진 미라맥스]

영화 ‘프리다’(2002)의 한 장면. [사진 미라맥스]

“왜 아름다운 얼굴에서 갈매기눈썹과 콧수염 정리는 안 했을까?”

“왜 외도를 일삼는 21살 연상에 미남도 아닌 남편과 끝내 헤어지지 않았을까?”

멕시코 예술의 거장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그림을 볼 때마다 속된 줄 알면서도 이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르곤 했다. 원래는 예술작품을 작가의 사생활과 지나치게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작품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게 아니면 작가의 사생활에 그리 관심도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칼로의 경우는 대표작 거의 대부분이 자화상이고, 얼굴에선 붉게 칠한 입술과 기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거뭇한 인중과 굵은 갈매기눈썹이 두드러지니, 아마도 일부러 의도한 그 모습에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자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1886~1957)도 자화상에 종종 등장하니 그들의 애증에 찬 관계도 궁금했다.

칼로의 전기영화로 가장 유명한 ‘프리다’(2002)는 아름다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의문을 많이 해소해주지 못했다. 감독인 줄리 테이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을 진지한 뮤지컬 무대로 옮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아프리카 전통 예술의 향연으로 성공시켜서(1997년 초연) 극찬 받은 바 있다. 영화 ‘프리다’에서도 칼로의 그림들을 색조와 분위기를 잘 살려 실사 영상으로 재창조했을뿐 아니라, 멕시코 문화 특유의 밝고 선명한 색채와 흥이 넘치는 선율에 배어있는 우울과 불안을 영상과 노래로 잘 살려서 시청각적으로 강렬하게 아름다운 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내용은 디에고 리베라와의 파란만장한 관계에 집중돼 있고 칼로의 예술가로서의 여러 면모와 심리, 그것이 그림으로 이어진 과정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몸의 뼈 산산조각, 35차례 넘게 수술

‘프리다 칼로 사진전’에 전시된 레오 마티스의 사진. ‘카사 아줄의 프리다 칼로, 1943’. [사진 메이드인 뷰]

‘프리다 칼로 사진전’에 전시된 레오 마티스의 사진. ‘카사 아줄의 프리다 칼로, 1943’. [사진 메이드인 뷰]

칼로는 실제로 “내 인생에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나를 땅에 내동댕이친 전차 충돌이었다. 다른 하나는 디에고다. 디에고가 더 나쁜 쪽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18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오랜 치료와 재활로 다시 걷게는 됐지만 후유증에 시달렸고 35번 넘게 수술을 해야했다.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3차례 유산을 겪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남편을 만난 게 더 최악이었다니, 도대체 남편이 어느 정도였기에….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의 친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이 말을 내뱉는다. 이후 한동안 남편과 떨어져 살며 그녀 또한 적극적으로 다른 연인들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왜 리베라와 이혼하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이혼 후 왜 1년 만에 재결합했는지 영화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만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비롯해 칼로에 대한 책과 전시들로 짐작하는 것은 리베라가 남편으로서는 최악이었지만, 예술 대선배로서 멕시코 토속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나 정치적 저항정신에서 칼로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한 칼로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나쁜 남자’ 파블로 피카소가 자신의 연인들의 예술혼을 꺾어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뮤즈로만 남도록 압박한 것과 달리 말이다. 물론 리베라가 칼로의 예술활동에 완전히 협조적이었는지는 미지수다. 칼로는 리베라를 놓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예술적인 면과 금전적인 면에서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에서 이런 면을 좀더 부각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한편 멕시코 전통에 입각한 프리다 칼로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멕시코 남서부 지방 테후아나 원주민 여성들의 의상인 풍성한 치마와 네모진 저고리, 꽃과 리본을 넣어 화려하게 땋아 얹은 머리, 원석 목걸이 등. 2018년 런던 V&A뮤지엄에서 칼로의 패션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전시에 따르면 그녀의 의상에는 몇 가지 의도가 있었다. 첫째는 서구에 의해 사라져가는 멕시코 원주민 전통 문화를 다시 찾고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의미였다. 이 부분을 남편 리베라는 특히 좋아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육체적 핸디캡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칼로는 전차 사고 후유증뿐만 아니라 6살에 걸린 척추성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가는 상태여서 걸을 때 약간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테후아나 의상의 풍성한 치마는 이것을 잘 감춰주었고, 화려한 머리장식은 사람들의 시선을 그녀의 하체가 아닌 얼굴로 향하게 했다. 또한 그녀는 사고 후유증이 심해지면서 몸통에 받침대를 대야 했는데, 헐렁한 테후아나 저고리는 이것을 잘 감춰주었고 그림을 그릴 때도 편했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미술사학자 헬가 프리그니츠-포다의 해석은 이렇다. “테후아나 의상은 멕시코 특정 지역의 가모장 문화(스스로 돈을 벌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강한 여성들의 문화)를 대표한다. 프리다 칼로는 이런 여성을 대표하고 싶어했다. 또한 그녀는 하나로 이어진 눈썹과 콧수염을 강조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그녀의 남성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프리다는 항상 여성성과 남성성, 둘 다를 갖춰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애니 ‘코코’ 예술가 칼로 잘 보여줘

애니메이션 ‘코코’(2017)의 한 장면. 저승의 프리다 칼로.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코코’(2017)의 한 장면. 저승의 프리다 칼로.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해서 스타일 자체가 의미심장한 발언이 되도록 하고, 삶 자체가 예술이 되도록 했던 칼로의 면모는 지금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다 칼로 사진전’(3월 26일까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건축 사진 작가였던 기예르모 칼로, 그녀의 연인이었던 니콜라스 머레이를 비롯해 20여 명의 사진 작가들이 칼로의 어린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담은 147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편 예술가로서의 프리다 칼로를 좀 더 잘 보여주는 영화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2017)가 아닐까 싶다. 이 애니는 멕시코의 ‘죽은 이들의 날(Día de los Muertos)’ 축제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12세 소년 미구엘이 산 채로 ‘죽은 이들의 나라’ 즉, 저승에 가서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서 소년이 만나는 죽은 유명인들 중에 바로 칼로가 있다. 이 애니에서 저승에 거하는 이들은 모두 해골 모습인데(디즈니-픽사답게 끔찍하지 않고 귀엽다), 멕시코의 종교의식과 축제에서 죽은 이를 해골로 표현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로 역시 해골 얼굴인데 트레이드마크인 갈매기눈썹만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

‘죽은 이들의 날’은 칼로와 리베라 모두 그림에서 여러 번 다룬 적 있는, 멕시코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축제다. ‘코코’가 묘사하는 저승은 딱 ‘죽은 이들의 날’ 축제 풍경처럼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예술적 흥과 광기가 넘친다. 주인공 소년이 만나는 칼로는 그 분위기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린다. 픽사는 예술가의 대표로서, 또한 멕시코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칼로를 등장시켰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코코’가 프리다 칼로를 신성하게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저승에서 ‘일출 장관 콘서트’의 도입부 퍼포먼스를 기획중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불타는 거대한 파파야에서 무용수들이 솟아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을 닮은 모습이다. 무용수들은 거대한 선인장으로 기어올라가 방울진 수액을 마시는데, 그 선인장 또한 칼로의 얼굴이며 그 수액은 자신의 눈물이다. 그 기획을 보여주며 프리다 칼로는 미구엘에게 묻는다. “너무 뻔하니?” 소년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를 아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대지와 동식물과 인간의 연결, 고통, 눈물 같은 모티프를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동시에 이 화가의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자화상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풍자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녀에 대한 애정과 존경과 약간의 빈정거림이 동시에 섞여 있다고나 할까.

이에 대해 ‘코코’의 공동감독인 아드리안 몰리나는 프리다 칼로가 워낙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이다보니 퍼포먼스도 그녀의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자화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는 프리다의 삶과 그림,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들에 대해 많은 리서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12세 소년의 시각에서 쓰는 게 좋았어요. 얼마나 난해한지 말이죠.”

이렇게 프리다 칼로는 여러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는 복합적인 예술가다. 칼로에 대한 여러 해석을 담은 작품들이 앞으로도 활발히 나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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